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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율과 유행: 한국 그래픽 디자인의 젊은 얼굴들』, 프로파간다 (2011/09) Autonomy and Trend: Young Designers in South Korean Graphic Design <자율과 유행> 단행본 출간 http://graphicmag.co.kr/ 사랑과평화시장 / 서동주 / 서울 디자인 스튜디오 / 스튜디오 [밈] / 스튜디오헤르쯔 / 실험실
디자인 컬처 매거진 지 콜론 (G:) 2011년 9월호, 디자인정글 디자인 읽기의 확성기 ⑪* 그래픽디자인의 사회 : 사유와 실천의 과제 어민선 원문: http://www.gcolon.co.kr/front/php/product.php?product_no=263&main_cate_no=1&display_group=2
현대 사회는 곧 디자인의 사회다. 다시 말해 오늘날 우리의 삶은 인간의 욕망과 잉여, 미와 기능의 가치에 대한 환상의 추구가 가시적인 (비)물질로 발현된 방식이자 그 자체로 비가시적 권력인 디자인에 의하여 지배당하고 있다는 뜻이다. 이와 관련하여 구체적이면서 장황한 예를 드는 것도 가능하지만, 바로 이 순간 우리의 평범한 일과와 환경을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이 사실은 자명하다. 나아가 프랑스의 사회학자 장 보드리야르가 분석한 “소비의 사회” 혹은 ‘영생의 기호 교환만이 남은 사회’같은 개념이나, 기 드보르와 상황주의자들이 규정했던 “스펙타클” 등의 해묵은 거대 담론을 끌어들이는 일도 가능한데, 때론 지겨워 보이거나 현대 자본 사회에서 더 이상 쓸모 없어 보일 수도 있는 이러한 탐구에도, 오늘의 디자인 사회를 이해하고 성찰하는데 여전히 유효한 측면이 있다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현대적 생산 조건들이 지배하는 모든 사회들에서, 삶 전체는 스펙타클의 거대한 추적물로 나타난다. 직접적으로 삶에 속했던 모든 것은 표상으로 물러난다.”1 “(전략) 풍부함과 소비(물론 물질적 재화, 생산물, 서비스의 소비가 아니라 소비 이미지의 소비)가 우리의 새로운 부족적 신화, 현대사회의 도덕이 되고 있는 것은 확실하다.(후략)”2 “(전략) 우리는 행위를 통해 자신의 주위에 우리 모습과 비슷한 세계를 만들어낸다.(중략) 나는 나 자신에게 하나의 타자가 된다. 즉, 소외된다.(후략)”3 거칠게 말해 지배 권력-현상의 담론에 대한 접근을 시도해 보는 일 또한 디자인의 본질과 정체를 비교적 커다란 인식의 틀로 바라보는 일을 가능케 한다는 이야기이다. 요컨대 별반 새로울 것이 없어 보이는 우리 삶의 스테레오 타입은 적어도 2011년의 한국과 유사한 체제와 사회 속에 사는 수많은 현대인들이 결코 피해갈 수 없는, 타자성의 실체 곧 소외의 자화상이며 풍성하면서도 텅 빈, 조울증 환자의 초상이자 풍경인 것이다. 내가 좋아서, 자율적 의지로 선택한, 풍성한 디자인과 함께하는 삶이라는 환상의 저 너머에는, 보이지 않는 난공불락의 거대한 전체주의적/전략적 생태계의 울타리가 있다. 이것을 간파하는 순간은 피터 위어의 영화 <트루먼 쇼>에서 주인공 트루먼이 바깥 세상을 향한 항해의 종착역이 실은 가상 세계의 세트장 벽이었다는 것을 깨닫고 패닉 상태에 빠지는 그 순간과 닮아있는데, 우리의 삶은 디자인된 세계에 대해 어떤 속박, 공황이나 염증을 느낄 기회를 얻는 일이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영화보다 더욱 달콤한 악마의 유혹과도 같다. 그렇게 포획된 삶의 최전선에 디자인의 본질이 있고 서두에서 말한 바와 같이 결국 디자인의 좌표는 욕망, 신화, 환영, 잉여, 이데올로기와 헤게모니, 위계, 시선, 문화, 소비, 이미지, 메시지, 존재론 따위의 정치적 지점 깊숙한 곳 그 어딘가에 있다. 그리고 그 풍경의 중심 위에 바로 작금의 그래픽디자인 현상이 있다. 그래픽디자인은 현대의 물신임과 동시에 역설적으로 그 물질성을 이미 대체하는, 곧 보이지 않는 현대 사회를 지배하는 권력의 중대한 일부인 것이다. 이러한 그래픽디자인이 본격적으로 등장한 시기를 19세기 말로 볼 때, 지금까지 120여 년이 넘는 시간이 흘렀다. 이 기간 동안 그래픽디자인은 많은 기술·방법론·개념·형태·양식적 변화를 겪었으나 인간의 삶에 관여하는 본질은 크게 변화하지 않았다. 다시 말해, 그래픽디자인은 그것을 필요로 하는 개인(디자이너 자신을 포함), 소수의 인원, 기업을 대표로 한 상업적 영역, 이윤 추구를 하지 않는 각종 사회·공공 단체와 운동 영역 등과의 광범위한 정보와 시각/예술언어적 소통과 어우러져 어떤 정체성을 스스로 부여해왔다는 것이다. 나아가 사회적 시스템, 정치-경제적 이해관계, 욕망 등을 다루며 거대한 산업과 문화적 기호, 때로는 소소한 일상, 물질과 비물질의 형태로 언제나 우리의 곁에 존재하며 삶의 양식을 이끌었다. 예컨대 1932년 바르바라 스페노바가 소비에트 연방을 위해 만든 포토몽타주 그래픽4, 80년대에 필자가 수도 없이 경험한 북한의 조악한 프로파간다 전단과 한국의 반공 전단, 그리고 오늘날 총선 때의 휘황찬란하지만 반미학적인 선거 현수막과 각종 시각물은 모두 명확한 정치적 이념과 목적의 실현을 추구한 그래픽디자인이다. 또한 일방적 소통에서 쌍방-다방형 방식으로, 권력 구조와 대중 조작의 주체 변화라는 엄청난 근본적 차이가 있긴 하지만, 대중들을 위한 현대적 매스 커뮤니케이션 디자인이라는 면에서 보면 1850년대 <뉴욕 타임즈>의 그래픽디자인과 2011년의 트위터 디자인 역시 맥락이 통한다고 할 수 있다. 상업적 영역에서 바라보면 모더니스트 그래픽디자이너의 대명사 폴 랜드가 1969년에 <IBM 스타일 하우스>에 수록한 IBM사의 코퍼레이트 아이덴티티 시스템을 꼽을 수 있는데, 이 역시 그래픽디자이너의 손길을 거친 2011년의 새로운 스타벅스 아이덴티티 시스템이 세상을 지배하고 자리매김하는 방식과 별반 다르지 않다. 이외의 무수한 그래픽디자인의 예를 끌어올 수 있겠다. 요컨대 시대를 초월하여 그래픽디자인은 의도했든 그렇지 않든 특정 사회의 시각문화 그리고 다양하게 확장된 양식으로 많은 이들의 삶 전체, 감각, 이성, 정신, 영혼, 이념, 욕망, 기호 등을 제어하고 잠식하며 지배하고 있다. 여기서 그래픽디자인의 인간 지배 방식과 그것을 도구 삼은 주체의 권력 추구는, 서두에 잠시 언급한 바와 같이 시각적 매개체를 사용하기 때문에 매우 가시적일 것만 같지만, 역설적이게도 매우 비가시적이다. 우리는 그래픽디자인 문화 자체에 매료되고 구속된 나머지 그것이 인간을 현대적인 의미의 노예로 만드는 측면이 있다는 사실을 쉽게 알아차리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설령 인지하였다 하더라도 그 속박으로부터 벗어나는 일 혹은 그 필요성을 수용하는 일이 현실적으로 매우 어렵기 때문이다. 따라서 인간이 본질적으로 욕망을 추구하는 존재이고 우리의 삶 어디에나 깊숙히 침투해 있는 그 대표적인 욕망의 산물이 디자인이라면, 나아가 위와 같은 지배의 권력을 거머쥔 그래픽디자인이라고 한다면 우리는 이 모든 욕망의 소산을 어떻게 바라보고 행동할 것인가라는 매우 현실적이지만 철학적인 자각 그리고 성찰의 문제와 직면하게 된다. “대중의 각성과 경계 이외에 현 사회의 미래를 보장해 줄 것은 없습니다.”5 그것은 결국 우리의 삶과 세계관, 삶의 가치와 의미에 매우 많은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결코 간과해서는 안된다. 따라서 그래픽디자인을 만드는 주체와 디자인을 소비하는 주체, 혹은 그 둘의 역할을 모두 담당하는 혹자들에게는 바로 이러한 성찰의 지점으로부터 지금까지와는 다른 종류의 렌즈로 그래픽디자인 문화를 바라보려는 태도가 필요하다. 그 때 비로소 그래픽디자인이라는 실체에 대해 사유하는 일과 그것을 바탕으로 한 실천이 가능하다. 그 방식 중 가장 중요한 것이 사유하고 연구하는 디자인을 추구하는 것이다. 여기서 사유나 연구 같은 단어만 나와도 현학적이거나 비현실적이라는 비린내를 느끼며 구역질을 낼 반지성주의적인 분들도 있을 수 있는데, 그러한 태도야말로 실제적인 그래픽디자인 현장을 개선하는데 전혀 도움이 안된다. 내가 말하는 연구와 사유는 그래픽디자인의 ‘디귿’자도 모르는 먹물들과 디자인 의뢰인들의 수박 겉핥기식 아는 체를 나타내는 엉터리 수사가 아니며 철학 담론 책에서나 볼 법한 어려운 말을 쏟아내자는 뜻도 아니다.(심지어는 지적 유희를 추구하는, 현학적인 글이나 현실적으로 쓸데없어 보이는 지루한 이론이나 목소리조차 눈여겨 보거나 귀담아 들어볼 필요도 있다.) 현실적인 디자인 환경과 삶을 개선하기 위해 두뇌를 적극 활용하며 개선 방법을 연구하는 일이 필요한 것이다. 그 연구의 첫 번째 방법은 그래픽디자인의 역사를 이해하고 집요하게 추적해 보는 일이다. 물론 그래픽디자인 역사서를 펼쳐놓고 유명한 디자이너의 이름이나 사조 따위를 줄줄이 꿰어 지식을 전파하는 일도 디자인사를 공부하는 매력적인 이유가 될 수 있겠지만, 더 중요한 이유는 다른 지점에 있다. 우리가 어떤 역사를 공부해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여러 이유 중에 중요한 하나는 흘러간 과거의 궤적을 탐사하고 현재의 좌표를 설정하여 바로 오늘의 삶이 어제보다 나은 미래가 되게 하기 위해서이다. 거의 상식에 가까운 이러한 역사 인식은 그래픽디자인의 실천에도 어김없이 적용된다. 물론 과거의 디자인을 바라보지 않아도 빛나는 오늘의 디자인을 하는 일은 분명 얼마든지 가능하다. 그러나 역사에 대한 인식과 탐구는 전통의 디자인이 가진 문제점을 파악 가능하게 하고 나아가 그것을 답습하지 않고 새로운 인식의 틀과 실천 의지를 꾸려갈 수 있게 하는 연료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것은 디자인을 생산하고 소비하는 주체가 가진 최소한의 권리이자 의무로 파악해야 한다. 다시 말해 역사의 궤적을 면밀하게 분석하는 과정은 그 자체로 자신의 비평적 관점과 생각과 논리를 덧붙이는 시간을 제공하기 때문에 곧 우리를 둘러싼 수많은 디자인 소비-스펙터클의 현상을 독해하고 환기시키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따라서 이러한 그래픽디자인의 문제적 상황을 답습하는 일에 조금이라도 도전해보고자, 그리고 성찰적인 그래픽디자인계의 담론과 작업의 실제를 가능케 하고자 우리는 그래픽디자인의 역사를 공부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르게 된다. 20세기, 이름 모를 디자이너가 만든 담뱃갑이나 우표, 청바지 광고, 장식 패턴 등 그래픽디자인사의 한 페이지를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그것이 위치했던 시대적 배경, 사회의 의미와 문화적 이데올로기 등을 알아차리는 일은 어렵지 않다. 게다가 이러한 익명의 그래픽디자인이라는 역사적 장면은 텍스트 밖의 현실 세계, 우리 주변 어디에나 있지 않은가? 나아가 한국의 조영제 디자이너가 기업 그래픽디자인의 화신 폴 랜드와 비견되는 이유, 네덜란드인 얀 반 토른이 디자이너의 정치적 태도 견지를 주창한 이유, 미국인 마이클 록이 작금의 자기 참조적(메타) 디자인에 관하여 비판적 제스처를 취한 이유, 영국인 로빈 킨로스가 현대 타이포그래피와 현대성의 발자취를 추적한 이유 등을 알아내기 위한 여정을 시작한다면, 그것은 디자이너에게 있어 어제와 오늘의 그래픽디자인 현상을 이해하고 미래적인 작업을 만들 수 있게 하는 첫걸음이자 첩경이 될 것이다. 여기서 무엇보다 그 태도와 방법이 중요한데 그것은 특정한 누군가에 의해 특정한 시대에 씌여진 특정한 역사를 비평적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이다. 대개 역사란 위와 같은 방식으로 기록되기 마련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역사가의 주관과 어떤 종류의 배제를 암시한다. 따라서 그 역사 기록의 칼날로 거세된 어떤 보석 같은 장면이나 인식방법에 관해서 살펴보려는 태도가 중요하다. 다음으로 그래픽디자인 이론에 대한 접근이 있다. 이 역시 이론이라는 말만 나와도 혀를 차거나 머리에 쥐가 날 분들에게는 별 도움이 되지 않을 듯싶다. 그래픽 디자인의 이론은 보통 그래픽디자인 역사 탐구와 동일한 선상에서 바라볼 수 있는 주제이다. 그것은 우리의 예상대로 지루한 텍스트이거나, 실제 생활에 필요 없는 순수한 잉여-지적 탐구활동이거나, 역사의 강물을 거슬러 올라 동시대 의식을 현상에 투영하는 일이거나, 일반적인 디자인 실무나 결과물을 분석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어떤 비평이거나, 디자인 비즈니스 작업과 동떨어진 가설과 실험적 목표를 세우고 그것을 검증하는 성취와 실패의 과정에서 나오는 디자인의 실체 그 자체이기도 하다. 예컨대 할 포스터는 『디자인과 범죄』6에서 아르누보 시대의 디자인과 그에 상응하는 모더니스트의 이론과 실천 등을 거론하며 현대 디자인의 실체에 대한 비판적 규명을 기도한다. 마우드 라빈은 저서 『그래픽디자인의 두 얼굴』7이라는 이론 저술에서 디자이너 로레인 와일드의 디자인 철학이 실무에서 반영되는 과정을 소개하는 등 실제적인 디자인과 관련된 시대-사회적 배경과 일면을 이론적으로 정립하려는 학문적 과정을 다룬다. 또한 디자이너 다니엘 반 데르 펠던은 <시 랜드>라는 가상의 영토 확장 작업을 통해 철저하게 추상적이고 이론적인 접근이 곧 명확하고 구체적인 이데올로기를 가진 디자인 작업의 몸이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다니엘의 작업에서 이론이란 내가 나의 작업을 위해 쓰고 있는 스테이트먼트, 곧 그래픽디자인 작품인 셈이다. 이처럼 그래픽디자인의 이론은 디자인사와 그 접점을 공유하며 내가 하는 디자인과 그것을 둘러싼 세상을 향한 비평적 시각을 가질 수 있도록 도와준다. 나아가 그래픽디자인이 세상의 모든 학문, 분야와 연결 가능한 것이라면 이론에 대한 탐구는 궁극적으로 인문학이나 과학 등의 다른 세계로 지각을 확장시킬 수 있는 훌륭한 기회를 제공한다. 요컨대 그래픽디자인에 대한 학구적이고 이론적인 접근은 좋은 디자인 작업과 그것을 가능하게 하기 위한 환경 조성을 위한 기초 공사와도 같은 것이다. 필자는 학부시절 한 동료에게 1980년대 포스트모던 그래픽디자인 양식사와 이론을 산문시 낭독 마냥 읊조린 바 있다. 이 때 그 동료는 그런 담론과 성찰 그리고 현재 우리가 접하는 그래픽디자인 좌표의 역사적 이유에 관해 지금까지 왜 전혀 알지 못했는지에 매우 안타까워했던 기억이 난다. 이를 통해 그는 디자인 스스로에 대한 비평적 시각에 대한 필요성을 깨달았다고 하였다. 그래픽디자인에서의 아방가르드란 대개 새로운 의미의 개념/양식적 그래픽디자인 실험과 작품을 의미한다. 하지만, 이와 동시에 앞서 말했듯 기존의 디자인이라는 것이 끊임없이 작동하는 일종의 거대 대사 시스템으로 자리한 채 우리의 삶 위에 군림하는 문제, 곧 인간의 삶을 잠식하는 문화적 도구로서의 디자인에 대해 깨우치도록 비평적 시각을 키우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와 같은 그래픽디자인사와 이론에 대한 탐구의 문제는 교육의 문제로 귀결된다. 위의 두 가지를 가장 효율적으로 실천할 수 있는 방법과 시스템이 교육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교육이란, 대학의 디자인 전공 학과에서 이루어지는 혹은 예술/디자인 중고등학교 등에서 전개되는 대표적 제도권 교육만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그래픽디자인 교육은 실무 현장 어디에서나, 언제나 이루어질 수 있고 또 그 교육이 끊임없이 실천되어야만 실제적인 변화가 가능하다. 예컨대 주식회사 홍디자인은 사원들이 그래픽디자인사와 이론을 탐구할 수 있는 시간인 <타이포그래피 인 원더랜드>라는 교육적 프로그램을 자체적으로 가지고 있다. 그런데 모든 디자인 교육에서 문제의 지점은 그래픽디자인 교육이나 커리큘럼에 있어 역사, 철학, 이론 등은 실기 과목에 비해 여전히 주변의 어떤 것으로 취급받는다는 사실에 있다. 단순하게 말하면 대개 디자인 대학 커리큘럼의 그래픽디자인사·이론 관련 수업 편성은 실기 과목 수에 비해 현저히 적다. 실무 현장에서 이론과 철학적 질문에 대한 비평적 토론 역시 디자인 작업과 기획의 전 과정에 투자하는 시간에 비해 매우 적은 것이 보통이다. 그렇다고 해서 단순히 실기와 이론에 대한 접근을 이분법적으로 분리한 채 대학 커리큘럼에서 이론 과목 수를 확대하는 일이나, 실무 현장에서 디자인사와 이론을 공부하는 시간을 늘리는 것만이 궁극의 해법은 아니다. 디자인에서 실제적인 작업은 곧 역사이고 이론이자 철학이며 동시에 디자인의 이론과 철학이 결국 디자인 작업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실기와 이론을 구별하지 않은 통합적인 교육의 방식을 전개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가장 정확해 보인다. 그러기 위해서는 교육자의 역할과 능력이 매우 중요하다. 당장 현장에 나가서 그래픽 디자인의 임무를 척척 수행할 수 있는 그래픽디자이너로서의 실무적 기량을 제대로, 현장감 있게 교육의 수혜자 스스로 깨우칠 수 있도록 돕는 것은 선배 디자이너들의 기본 역량이다. 아울러 디자인사와 이론을 실무와 적절하게 결합시키고, 타학문 영역으로 탐구를 확장시킬 수 있도록 유도하여 그것을 바탕으로 깊이 있는 사유와 균형 있고 비판적인 디자인 실천을 하도록 돕는 것 또한 대단히 중요한 것이다. 이러한 과정은 직접적인 교육을 펼치는 것으로도 가능하지만 작업의 실천을 통해 자극이 되는 형태로도 가능하다. 이것이 바로 권위적 스승이 아닌 참된 교육자의 모습이다. 한편, 이 모든 그래픽디자인과 그것에서 파생된 우리의 삶에 대한 성찰의 열망은 비즈니스 그래픽디자인을 하고 있는 대부분의 디자이너에게 있어 결코 쉽게 접근 가능한 문제는 아니다. 어떻게 보면 현실적 디자인 프로젝트를 해치우는 데에는 디자인사나 이론, 인문학이나 교육에 대한 집중 보다는 기술적 숙련도나 통합적인 아트디렉션에 대한 이해가 훨씬 더 중요할 수도 있다.(실제로 이러한 기본적인 교육마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현장에서 고전하는 신입 디자이너가 많다는 이야기를 종종 듣는다.) 또한 역설적이게도 그래픽디자이너들에게 제 분야를 공부하고 그것에 대해 깊이 생각하며 나누고 실천할 시간은 전혀 충분하지 않다. 일을 과도하게 사랑하라고 강요하는 고질적 사회적 병폐를 안고 있는 한국의 기업 구조와 문화가 어딜 가나 비슷하겠지만, 비록 이것이 디자인 현장의 좋지 않은 일면에 불과할지라도, 사실상 지금까지 대부분의 그래픽디자인 산업 현장은 어딜 가나 화약과 송장 냄새가 진동하는, 전우가 죽어나가도 밟고 전진해야만 하는 전쟁터와 같았고 또한 현재 진행형인 곳이 많다. 아름다운 스튜디오는 겉모습일 뿐이거나 대중들이 연출된 대중 매체를 통해 접하며 형성한 신화적 도상에 가깝다. 최소한 내가 직접 경험하고 들은 과거의 그래픽디자인 비즈니스의 현장은 그러했다. 필자가 굳이 과거형을 사용한 이유는 우리 세대의 그래픽디자인 현장이 어떤 형태로든 변화해야 한다는 일종의 의지나 건설적 강박으로부터 비롯한다. “좋은 클라이언트는 없으니 우리는 영원히 이렇게 살아야 하나.”라는 그래픽디자인계의 씁쓸한 자학적 농담은 그저 농이 아니다. 탤런티드-만능 해결사인 그래픽디자이너는 말도 안되게 오만방자하고 교활한 의뢰인을 만나, 어처구니 없는 일정 속에, 디자인 프로젝트에 대한 몰이해를 바탕으로 많은 디자인료를 지불할테니 무조건 해내라 강요당하고, 자연스럽게 밤낮없이 일하면서도 설득과 위계질서를 위한 정치적 대립과 반목, 화해를 일상으로 여기며 살아야 한다. 거기에 자신이 아트디렉터나 디자인 컨설턴시의 대표자가 아닌 이상 디자인 회사를 상대로 여러 가지 임금의 문제, 디자이너 개인의 의지나 가치관 표명, 작업 방법론의 충돌 문제 등이 겹쳐지는 지점에서 그래픽디자인은 진취적인 정신적 예술 문화 활동 혹은 육체적 노동의 가치를 지닌 것이 아닌 그냥 살아야 하니까 할 수 없이 해야 하는 ‘업’으로 전락한다. 이 모든 것은 글의 서두에서 필자가 나열한 거대한 사회적 시스템과 관련된 일이기 때문에 이 앞에서 자유로울 수 있는 부류의 그래픽디자이너는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언제까지나 거스를 수 없는 시대적 흐름만을 탓하기에는 디자이너들의 능력과 삶이 아깝다. 물론 시스템의 변화는 근본적인 문제의 해결에 큰 도움을 줄 수 있겠다. 다만 시스템이란 환상을 기대하기 이전에, 주어진 삶 속에서 디자이너 스스로 변화를 모색해보려는 노력은 대단히 중요하다. 언제까지 사회 구조와 권력, 계급의 탓만 할 것인가? 언제까지 디자인 스펙터클과 소비 사회를 건설하고 유지하는 첨병 역으로만 분할 것인가? 언제까지 그래픽디자인의 방법론과 디자이너의 재능을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예쁜’ 도상으로 포장해주는 데에만 사용하는 자의 자리에 만족해야 할 것인가? 자신의 생각을 펼치는 데에 사용하면 안되는 것일까? 마이클 록의 말처럼 디자이너에게 콘텐츠란 영원히 디자인 그 자체에 불과할 뿐일까?8 그래픽디자이너들이 이론과 비평의 탐구 속에서 그리고 그것을 토대로 자신의 사유 과정을 담은 작업의 실천 속에서 움직이려고 시도할 때야 비로소, 새로운 디자인 패러다임을 꿈꿀 수 있고, 그토록 갈망하던 디자이너의 권위와 권리 따위를 스스로 획득할 수 있다. 디자인 이론가인 기 본지페는 ‘디자인의 몇 가지 덕목’이라는 글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전략)어떤 종류의 인간적 관심사를 다룰 것인가, 어떻게 다룰 것인가, 서로 다른 여러 관심사를 어떻게 조화시킬 것인가 하는 문제가 바로 덕목의 문제다. 따라서 덕목은-이론적 전제와 유사하게-모든 디자인 실천에 스며있다. 여기에는 하드코어적인 디자인 비즈니스와 너무나 거리가 먼 그런 부드럽고 비현실적인 질문을 접할 때 약간의 당혹감마저 느낄 그런 ‘비정한’실무 디자이너의 실천 역시 포함된다.”9 “디자인을 넓은 사회문제들과 연결시키려는 노력은-직업적인 디자이너의 세계에서-무관심에서 짜증에 이르는 다양한 반응을 불러일으킨다. (중략) 디자인은 비즈니스지만, 그것만은 아니다. 디자인을 비즈니스로 국한시키는 것은 기업 경영인의 역할을 이윤 창출로만 국한시키는 것 만큼이나 단순한 생각이다.(후략)”10 이제 다시 역사, 이론 그리고 교육에 대한 탐구와 필요성을 안고 다시 풍성한 디자인의 사회 속으로 들어와 스스로에게 질문해 보자. 영원불멸하는 디자인에 속박된 삶 속에서 그래픽디자인은 지속 가능한 그 존재 가치의 정당성을 획득할 수 있을까? 필요성이 곧 존재의 정당성은 아니지만 이것은 “그래픽디자인이 필요한가 혹은 가능한가?”라는 질문일 수 있다. 이것은 디자이너와 디자인 소비와 관련한 수많은 현실 세계의 직종-디자이너, 사진작가, 카피라이터, 편집자, 인쇄소 기사, 배송기사, 제지 회사, 제본 및 후가공 공장, 용역 노동자, 심지어 분야를 막론한 클라이언트-와 관련한 문제이다. 과거 급진적 사회 철학자, 이념가들은 소비나 스펙터클이 지배하는 세상에 대항하여 어떤 정치적 체제의 실현을 통한 변화나 혁명적 실천으로 그들의 생각을 결론지었다. 또한 그러한 사회 현상에 대한 깊이 있고 냉철한 사유가 디자인에 의해 잠식당한 오늘의 사회를 향해 인간성의 회복에 대한 성찰과 실천의 실마리를 제시할 수 있다. 다만 인간의 욕망이라는 것이 존재하는 한 그러한 방법론들의 극단적 강요를 지금의 우리의 삶에 적용하는 것은 무리가 있어 보인다. 이러한 접근은 금욕주의나 냉소주의, 염세나 허무주의, 지나친 이상주의의 만트라를 좇는 자들만을 양산하는 것으로 전락해 버리고 말지도 모른다. 결국 위대하다는 평을 받는 사회학자, 철학자들도 명확한 현실적 결론을 도출하지는 못했다. 현실적으로 경제의 문제로부터 자유로운 환경에 있거나 학교에서 일정한 월급을 받으며 디자인 비즈니스를 병행할 수 있는 교육자가 아닌 다수의 그래픽디자이너의 문제를 비춰보면 오늘의 그래픽디자인의 존재를 부정하고 디자인 비즈니스 현장을 떠나는 순간, (다른 직업을 찾기 전에는) 생계를 유지하기란 만만치가 않다. 이러한 지점에 오늘의 그래픽디자이너가 어찌할 수 없는, 어떤 급진적 수사를 실천으로 옮기기 어려운 현실의 굴레가, 욕망이 낳은 디자인의 노예가 되지 않으려 하면서도 디자인에 대한 욕망을 추구하며 살지 않을 수 없는 모순성이 존재한다. 작금의 그래픽디자이너들이 당면한 일종의 공황과 혼란이다. 풍성하고 온건한 디자인 사회와 비옥한 자본 환경을 바탕으로 한 교육의 혜택을 받으며 성장한 주제에 욕망과 계급, 절제와 자유를 운운하는 것은 위선적일 수 있다. 사과농장의 컴퓨터로 디자인 사회의 아름다움을 찬양하는 내용이 아닌 어떤 우려를 제기하는 글을 쓰고 현대 디자인 자본의 유통 시스템을 통해 널리 알리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주어진 현실 속에서 디자인에 투영된 욕망을 동기 삼아 가족의 행복을 위해 성실히 살아갈 뿐인 현대인에게 자각이 없다며 계몽주의적 태도로 비난하는 것도 어렵다. 삶의 근간을 뒤흔드는 비평적 텍스트를 읽으며 디자인에 속박 당한 현실을 비판하면서도 섹시한 승용차와 현대 인테리어 그리고 달콤한 로고와 브랜드를 탐닉할 수 밖에 없는 것이 오늘날을 살아가는 ‘디자인 중생들의 군상’인 것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그래픽디자이너가 아무 것도 할 수 없다거나 더 이상 해야 할 일이 없다는 말은 아니다. 여기서 주저앉으면 돌아오는 것은 그저 지긋지긋한 오늘일 뿐이다. ‘아방’한 디자인을 외치면서 주어진 상황에서 움직이는 것은 분명 진보를 가장한, 절충적이고 실망스러운 한계일지 모르지만 그래픽디자이너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지 않는다면, 사회에 기생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기도 벅찬 디자이너들에겐 직시해야 할 현실의 방법론이 있다. 또한 그렇게 움직이는 소수 디자이너들의 생존 전략이 몇 년 전부터 감지되고 있다. 그것은 일반적 그래픽디자인 비즈니스, 다시 말해 젊은 디자이너들이 규모 있는 스튜디오에 몸담으며 (혹은 개인 스튜디오를 소규모로 유지하거나 여타의 경제 활동을 통해) 경제적 문제를 해결하면서, 성찰적인 개인 작업을 별도 혹은 통합된 디자인의 활동으로 만들어 내거나, 혼자 또는 함께 사유하고 실천에 옮기는 양상을 보이고 있다는 것이다. 일례로 필자가 참여했던 <가짜잡지> 프로젝트가 있다. 일견 전혀 흥미로워 보이지 않고 특별할 것 없어 보이며 심지어 미학적 세련을 포기한 것처럼 보이는 이 소소한, 과연 이것이 디자인인지 무엇인지 모를 이 모호한 프로젝트에도 현실 사회에 대한 젊은이들의 날카로운 성찰의 시선이 담겨있다. 그리고 어떤 이들에 의해 ‘아트’, ‘온실 작업’ 혹은 세상 물정 모르는 젊은이들의 치기 어린 마스터베이션이라고 치부될 수도 있는 소박한 실험성이 꿈틀댄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러한 종류의 시도가 지닌 가치는 그래픽디자이너들이 그들의 두뇌와 재능을 기업이나 다른 어떤 소비의 대상만을 위해 활용하는 차원을 넘어, 주체적 사유와 어떤 정치적 발화의 도구로 삼고 있다는 점에 있다. 이것은 일상적 소비와 구경의 대상으로 그 정체를 굳히며 우리 삶을 지배해온 그래픽디자인 자신에 관한 성찰과 대안에 대한 고찰을 그래픽디자인의 문법을 사용하여 이야기하고 있다는 면에서 주목할 만하다. 이 모든 것이 넓은 의미에서 어제의 디자인사 혹은 우리의 삶을 학문/이론적 토대를 통해 디자이너 스스로 탐구하며 통찰하는 과정과 교육에서 나온 사유의 오늘이며, 이론적 주장임과 동시에 구체적인 몸을 지닌 우리 시대의 그래픽디자인 그 자체인 것이다. 또한 그래픽디자인의 패러다임에 어떤 변화가 가능한지 미미하지만 아주 작은 불씨를 던진 일과도 같다. 다만 이러한 노력에도 어떤 위험성은 항상 도사리고 있다. 소수 영역에서의 의미 있는 역사 철학연구, 이론 정립과 탐구, 교육, 디자인 작업과 논의는 분명 매우 가치 있는 일이지만, 이러한 과정이 지나치게 소수에 의해서만 실현되고 제한될 때 그 노력은 더 넓은 사회의 영역에 좋은 영향을 끼칠 수 있는 기회를 놓쳐버릴 수도 있다. 따라서 앞으로 우리의 그래픽디자인이 사회의 더 넓은 영역을 아우르며 디자인의 역사와 이론에 대한 비평적 접근과 교육을 접붙히고 모든 과제를 사유하고 실천할 때, 그래픽디자인의 사회적 재정의와 의미에 관한 지평의 확장이 가능케 될 것이다.
참고문헌 1. 기 드보르,『스펙타클의 사회』, 이경숙 옮김, 현실문화연구, 1996, p.10. 2,3. 장 보드리야르,『소비의 사회』, 이상률 옮김, 문예출판사, 1991, pp. 319-320, 329. 4. 리처드 홀리스,『그래픽디자인의 역사』, 문철 옮김, 시공사, 2000. 5. 노암 촘스키,『촘스키, 누가 무엇으로 세상을 지배하는가』, 강주헌 옮김, 시대의 창, 2002, p.97. 6. 할 포스터,『디자인과 범죄』, 이정우 옮김, 시지락(현 홍디자인), 2006. 7. 마우드 라빈,『그래픽 디자인의 두 얼굴』, 강현주 손성연 옮김, 시지락(현 홍디자인), 2006. 8. Michael Rock, Fuck Content, 2005. 9,10. 기 본지페,『디자인을 넘어선 디자인』,‘디자인의 몇 가지 덕목’, 최성민 옮김, 시공아트, 2004, pp.105, 107.
Copyright(C)2011 어민선 .................................................................................................................... 어민선 그래픽디자이너. 텍스트(Text), 홍디자인, IMJ에서 디자이너 및 연구원으로서 여러 작업을 진행해 왔으며, 동시에 세상을 향한 성찰과 사유를 디자인의 방법론과 글을 통해 펼쳐내고 있다. 국민대학교 시각디자인학과를 졸업하였고, 미국 로드 아일랜드 디자인 대학교(RISD)에서 그래픽디자인 석사과정을 진행할 예정이다. 그의 작업과 글, 인터뷰는 몇몇 국내외 잡지와 도록, 전시에서 소개된 바 있다. H minsuneo.com B minsun_eo.blog.me
내가 알기로 현재 국민대학교의 조형대학을 "조형대학(College of Architecture and
Design)"이라고 명명한 것은 여러 의미가 있지만, 특별히 당시의 시대적 정황과 맞물려 순수예술과는 구별되는, 디자인 분야를 위한 종합대학 내 전문적인 단과대학으로서의 독립적인 입지 구축에 대한 의지의 표명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의미상/표현상 당시로서는 국내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급진적이고 혁신적인 가치를 지닌 일이었는데, 다소 의아했던 점은 왜 '디자인대학'이 아닌 '조형대학'이었는가 하는 점이었다. 외래어 사용에 있어 보수적이고 민감했던 당시에, 많은 고민 중에 디자인을 한문이나 국어로 옮겨 표현하기에 적확한 단어를 찾지 못해서였을까? 이제 2011년. 이 사실을 두고 예전부터 종종 떠오르는 것은, 오늘의 포괄적이고도 구체적인 디자인 개념을 이 '조형대학'의 '조형'이란 단어로 과연 설명 가능한가 하는 점이다. (하긴 '예술체육학부', '예체능'같은 전근대적이고 시대착오적인 개념이 아직도 멀쩡히 살아있는 판인데.) 사실 엄밀히 말하면 '조형=디자인'이라는 개념은 성립하지 않기 때문에, '디자인대학'이라는 말이 오늘의 시대적 상황과 학교의 속성을 더 잘나타낼 수 있는 현대적인 표현이다. 또한 건축대학이 분리된 현재의 영문 명칭인 "College of Design"과도 의미상 더 일치한다. 한가지 더, 예술과 디자인이 모호한 경계와 영역/지점/방법론을 공유하는 오늘날, 그리고 무엇이 인간을 위한 의미있는 디자인 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바로 이 순간에, 과거 디자인과 디자이너에 어떤 구별된 사회적 지위를 부여하기 위해 행해졌던 치열한 노력 혹은 디자인 프로페셔널리즘(우리가 지금 디자이너라는 명찰을 달고 먹고 살 수 있는데 크게 기여한 과거적 가치 중 하나)을 지향했던 시대적 흔적의 일부인 디자인 단과대학이란 이름과 그 속성은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본다. ![]() 파울 레너: 타이포그래피 예술 Paul Renner: art of typography 크리스토퍼 버크 지음 최성민 옮김 워크룸 프레스 펴냄 workroom@wkrm.kr www.workroom.kr ISBN 978-89-94207-06-3 03600 가격 22,000원 ----- 20세기를 대표하는 활자체, 푸투라를 탄생시킨 파울 레너 그의 삶과 업적을 통해 본 현대주의 "파울 레너라는 이름은 우리에게 그리 익숙하지 않다. 하지만 그가 디자인한 푸투라는 20세기에 가장 널리 알려진 활자체에 속한다. 1927년 독일에서 출시됐을 때 푸투라는 ‘우리 시대 서체’로 불렸다. 그것은 수공예에서 기계시대로의 전환을 알리는 전형적 예였고, 진보적 그래픽 디자이너와 타이포그래퍼들이 추구한 ‘새로운 타이포그래피’의 상징이었다." – 스티븐 헬러, 디자인 평론가 "다른 주요 인물도 버크의 책만큼 세심하고 철저한 연구로 기릴 수 있다면, 타이포그래피는 더 건강한 분야가 될 것이다." – 로버트 브링허스트, «엘리먼트 오브 타이포그래픽 스타일» 지은이 "버크는 시대의 요구에 응답한 모범적 디자이너이자 교육자, 저술가 파울 레너를 통해 현대주의와 현대성을 세밀하게 그려 낸다. 20세기 전반에 현대 디자이너가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풍요롭고 복잡하게 묘사하는 책이다." – 에릭 킨델, 레딩 대학교 교수 "이 책의 핵심은 현대와 현대주의, 현대성에 대한 논쟁이다. 또한 이 책은 바우하우스에 치중한 이 시기 독일 타이포그래피 역사를 야심 차게 수정하려 한다. 버크는 디자인 철학과 정치 신념, 예술적 형태를 넘나들면서, 그간 생략되었던 그림을 찾아 낸다." – 제레미 에인슬리, 로열 컬리지 오브 아트 교수 ----- 1878년에 태어난 파울 레너는 바이마르 공화국과 나치 시대, 두 차례 세계대전이라는 역사적 격동기 독일에서 출판 디자이너이자 교육자, 활자 디자이너, 저술가로 활동하며 자신이 맞닥뜨린 시대의 요구에 능동적으로 대처한 현대인이다. 미술을 공부한 레너는 문화 부흥이 일어나던 뮌헨에서 자신이 물려받은 전통적 가치를 대량생산을 위한 일상적 도서에 적용하는 한편, 독일공작연맹 주요 회원으로 기술을 둘러싼 논쟁에 적극 참여했다. 1920년대에 프랑크푸르트에서 급진적 현대주의와 마주친 레너는 태도와 양식 모두에서 냉철함을 견지하며 디자인의 가치를 실현했다. 뮌헨에 돌아와 디자인 장인학교를 이끌 때에는 젊은 얀 치홀트 등을 교수로 영입해 현대주의 타이포그래피를 성숙하게 발전시켰다. 1924년 그가 디자인에 착수한 푸투라는 기하학적 엄격함과 수공예적 세밀함을 두루 갖춘 ‘우리 시대 서체’로 20세기에 가장 성공한 활자체 중 하나가 되었다. 일찍부터 디자인에 대한 생각을 글로 밝혀 온 레너는 나치스가 세력을 넓히던 시기에도 양심에 따라 발언하고 행동했으며, 결국 1933년 정권을 잡은 나치스에 체포, 모든 직위에서 해임되어 사실상 내부 망명에 들어갔다. 그럼에도 활자체 디자인과 저술 작업을 계속하던 그는, 제2차대전이 끝난 후에도 경험과 이성에 바탕한 목소리로 당대의 디자인 문제에 대해 발언을 이어갔다. 이 책 «파울 레너»는 그동안 디자인 역사에서 조명되지 않거나 과소평가됐던 파울 레너를 정면으로 다룬 첫 번째 연구서이자, 19세기와 20세기 디자인의 가교로서 평생 어떠한 교조주의에도 흔들리지 않고 전통과 현대 사이의 긴장을 유지하며 ‘영원히 타당한’ 가치를 좇은 한 개인의 삶을 기록한다. ----- 서문 특정 디자이너나 미술가를 연구하는 작업에는 흔히 역사적 계보에 해당 인물을 새기려는 암묵적 의도가 있다. 내가 파울 레너에 처음 관심을 두었을 때에도 그런 욕망이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1920년대 말에서 1930년대 초 전성기 현대주의 그래픽 디자인에서 중요한 요소였고 지금도 널리 쓰이는 활자체 푸투라를 그가 디자인했다는 사실은 나를 매료했다. 그처럼 영속적인 작품 뒤에는 어떤 인물이, 어떤 생각이 있었을까 하는 물음이 나를 사로잡았다. 레너 연구를 시작하기 전, 나는 그가 1922년에 발표한 «예술로서 타이포그래피»를 본 적이 있다. 엄격한 전통 양식에 따라 고딕체로 짜인 책이었다. 고딕체의 미묘한 성질을 배우지 못한 영국인에게, 그 책은 독일 문화의 신비로 둘러싸인 물건처럼 보였다. 단순하고, 간결하고, 언뜻 보기에 국제성을 호소하는 푸투라에서 그보다 거리가 먼 작품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이처럼 파울 레너 디자인 작업의 두 지표는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에서 나온 듯했기에, 나는 그의 작업에서 일정한 대비를, 아니면 적어도 발전 과정을 알아내 보리라 마음먹었다. 그런데 막상 레너에 대한 연구를 시작해 보니, 순수한 시각적 자료보다는 오히려 그가 디자인에서 현대성을 바라본 관점, 왕성히 글로 써서 밝힌 그 시각이 더욱 관심을 끌었다. 나는 디자이너 레너를 그가 활동한 시간과 장소에 놓고 보려 할 것이다. 나는 그가 디자인한 작품뿐 아니라 그가 디자인을 두고 한 말에도 집중할 것이다. 그가 밝힌 관점이나 의도가 늘 실천과 일치하지는 않았지만, 그가 한 말은 자신이 속한 분야를 성찰하려 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당대 담론과 교류하려 했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가치 있다. 파울 레너의 사유와 행동을 평가할 때, 이상적인 바이마르 시대의 현대주의자 상과 비교해 가늠하는 일은 잘못일 것이다. 하지만 레너를 연구하는 동안 내 마음 한구석에는 그처럼 불가능한 초인상이 척도로 자리 잡았다. 그 가상의 현대주의 디자이너는 어떤 인물일까? 거의 확실히 남성일 것이다. 독일인이나 러시아인 또는 동유럽인으로 나이는 서른 정도일 것이다. 순수미술가로 교육받았지만 부르주아 예술관은 경멸하며, 공산주의자가 아니라면 적어도 사회민주주의자일 것이다. 낡은 세계의 계급 차별이나 종교적 관습을 거부하는 자유사상가로서, 세속적이고 기술적인 새 세상을 열렬히 반길 것이다. 현대적 대도시에서 살고 일하며, 책을 왕성히 읽을 뿐만 아니라, 영화를 즐기고 재즈 음악을 들을 것이다. 이처럼 공상적인 인물에 파울 레너를 비교해 보면, 뚜렷한 차이가 금세 드러난다. 바이마르 공화국이 탄생한 1919년에 레너는 벌써 마흔이었다. 그는 자신이 비정치적이라 여겼고, 영화를 포함해 기술혁신에 대해서도 얼마간 회의적이었다. 나는 현대주의 신화의 이면을 더 깊이 파헤쳐 그 신화에 쉽게 동화하지 않는 인물들의 실상을 일부 알아내려 한다. 내 의도에는 기존 역사가 제시하는 현대주의 타이포그래피의 정설을 보완하려는 뜻도 있다. 그 정설의 중심에는 얀 치홀트, 헤르베르트 바이어, 엘 리시츠키 같은 일부 개인 디자이너와 데사우 바우하우스에서 이루어진 소량의 작업이 있다. 후자에는 오늘날 바우하우스를 둘러싼 신화 덕분에 부당하게 신비한 기운이 서린 상태이다. 오빙크는 새로운 타이포그래피가 “바우하우스에서 촉발되었지만 특히 독일인쇄장인학교[레너 교장 시절 치홀트도 가르친 학교]에서 발전했다”라고 지적했다. 장인학교는 그래픽 디자인 역사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았고, 레너의 타이포그래피 저작에 담긴 생각은 한 번도 진지하게 논의되지 않았다. 이어지는 레너 연구는 그가 성공적인 활자체 푸투라 외에도 글쓰기와 뮌헨에서 펼친 교육 활동을 통해 현대 타이포그래피에 크게 이바지했다는 주장을 함축한다. 이 책은 연대순으로 정리해 놓았다. 각 장은 해당 시기의 일반적 경향을 간략히 소개하고 그 시기에 레너가 한 일을 살펴본다. 넷째 장과 다섯째 장은 레너의 이력에서 두 국면을 자세히 들여다 본다. 하나는 그가 선구적 활자체 푸투라를 디자인한 과정이고, 다음은 그가 나치 당국에 체포된 사건이다. ‘현대주의’, ‘현대적’, ‘현대성’ 등 용어의 상대적 차이에 대한 호기심도 책 전체를 아우르는 관심사였다. ‘현대주의’라는 말은 조심스럽게 썼다. 나는 제2차대전 후 미국 미술사학자들이—특히 클레멘트 그린버그가—개발한 용어로서 현대주의, 즉 자기 반영적 예술 실천으로서 현대주의라는 말은 쓰지 않으려 했다. 20세기 후반에 등장한 그 현대주의 개념은 같은 세기 전반에 일어난 미술과 디자인 운동에 소급 적용된 듯하다. 독일에서 양차 대전 사이에 활동하던 디자이너들은 ‘현대주의’를 말하지 않았다. 여러 ‘주의’가 있었지만, 그 신봉자들은 자신들이 무차별적 ‘현대주의’ 집단에 속한다고 여기지 않았다. 20세기 현대주의는 1920년대에 젊은 영웅들이 한 발언을 선별적으로 확대해석해 엮은 역사적 구성물이자, 사후적 현상이다. 현대주의에 일관된 역사적 논리가 있다고 암시한 첫 사례는 아마 1936년에 ‘현대 운동’을 설명한 니콜라우스 페브스너일 것이다. 내가 말하는 ‘현대주의’는 양차 대전 사이의 디자인과 연관된 양식뿐 아니라 이념적 차원도 가리킨다. 디자인에 대한—그리고 삶에 대한—이성적, 과학적 접근을 믿고, 인간은 본디 합리적이라고 가정하는 이념이다. 이는 계몽 시대로까지 거슬러 가는 ‘현대성’ 개념과 중첩한다. 일곱째 장에서 나는 이처럼 뒤얽힌 용어들을 더 꼼꼼히 풀어 볼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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