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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알기로 현재 국민대학교의 조형대학을 "조형대학(College of Architecture and
Design)"이라고 명명한 것은 여러 의미가 있지만, 특별히 당시의 시대적 정황과 맞물려 순수예술과는 구별되는, 디자인 분야를 위한 종합대학 내 전문적인 단과대학으로서의 독립적인 입지 구축에 대한 의지의 표명이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었다. 의미상/표현상 당시로서는 국내에서 찾아볼 수 없었던 급진적이고 혁신적인 가치를 지닌 일이었는데, 다소 의아했던 점은 왜 '디자인대학'이 아닌 '조형대학'이었는가 하는 점이었다. 외래어 사용에 있어 보수적이고 민감했던 당시에, 많은 고민 중에 디자인을 한문이나 국어로 옮겨 표현하기에 적확한 단어를 찾지 못해서였을까? 이제 2011년. 이 사실을 두고 예전부터 종종 떠오르는 것은, 오늘의 포괄적이고도 구체적인 디자인 개념을 이 '조형대학'의 '조형'이란 단어로 과연 설명 가능한가 하는 점이다. (하긴 '예술체육학부', '예체능'같은 전근대적이고 시대착오적인 개념이 아직도 멀쩡히 살아있는 판인데.) 사실 엄밀히 말하면 '조형=디자인'이라는 개념은 성립하지 않기 때문에, '디자인대학'이라는 말이 오늘의 시대적 상황과 학교의 속성을 더 잘나타낼 수 있는 현대적인 표현이다. 또한 건축대학이 분리된 현재의 영문 명칭인 "College of Design"과도 의미상 더 일치한다. 한가지 더, 예술과 디자인이 모호한 경계와 영역/지점/방법론을 공유하는 오늘날, 그리고 무엇이 인간을 위한 의미있는 디자인 인지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바로 이 순간에, 과거 디자인과 디자이너에 어떤 구별된 사회적 지위를 부여하기 위해 행해졌던 치열한 노력 혹은 디자인 프로페셔널리즘(우리가 지금 디자이너라는 명찰을 달고 먹고 살 수 있는데 크게 기여한 과거적 가치 중 하나)을 지향했던 시대적 흔적의 일부인 디자인 단과대학이란 이름과 그 속성은 과연 어떤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본다. ![]() 파울 레너: 타이포그래피 예술 Paul Renner: art of typography 크리스토퍼 버크 지음 최성민 옮김 워크룸 프레스 펴냄 workroom@wkrm.kr www.workroom.kr ISBN 978-89-94207-06-3 03600 가격 22,000원 ----- 20세기를 대표하는 활자체, 푸투라를 탄생시킨 파울 레너 그의 삶과 업적을 통해 본 현대주의 "파울 레너라는 이름은 우리에게 그리 익숙하지 않다. 하지만 그가 디자인한 푸투라는 20세기에 가장 널리 알려진 활자체에 속한다. 1927년 독일에서 출시됐을 때 푸투라는 ‘우리 시대 서체’로 불렸다. 그것은 수공예에서 기계시대로의 전환을 알리는 전형적 예였고, 진보적 그래픽 디자이너와 타이포그래퍼들이 추구한 ‘새로운 타이포그래피’의 상징이었다." – 스티븐 헬러, 디자인 평론가 "다른 주요 인물도 버크의 책만큼 세심하고 철저한 연구로 기릴 수 있다면, 타이포그래피는 더 건강한 분야가 될 것이다." – 로버트 브링허스트, «엘리먼트 오브 타이포그래픽 스타일» 지은이 "버크는 시대의 요구에 응답한 모범적 디자이너이자 교육자, 저술가 파울 레너를 통해 현대주의와 현대성을 세밀하게 그려 낸다. 20세기 전반에 현대 디자이너가 된다는 것이 어떤 의미였는지를 풍요롭고 복잡하게 묘사하는 책이다." – 에릭 킨델, 레딩 대학교 교수 "이 책의 핵심은 현대와 현대주의, 현대성에 대한 논쟁이다. 또한 이 책은 바우하우스에 치중한 이 시기 독일 타이포그래피 역사를 야심 차게 수정하려 한다. 버크는 디자인 철학과 정치 신념, 예술적 형태를 넘나들면서, 그간 생략되었던 그림을 찾아 낸다." – 제레미 에인슬리, 로열 컬리지 오브 아트 교수 ----- 1878년에 태어난 파울 레너는 바이마르 공화국과 나치 시대, 두 차례 세계대전이라는 역사적 격동기 독일에서 출판 디자이너이자 교육자, 활자 디자이너, 저술가로 활동하며 자신이 맞닥뜨린 시대의 요구에 능동적으로 대처한 현대인이다. 미술을 공부한 레너는 문화 부흥이 일어나던 뮌헨에서 자신이 물려받은 전통적 가치를 대량생산을 위한 일상적 도서에 적용하는 한편, 독일공작연맹 주요 회원으로 기술을 둘러싼 논쟁에 적극 참여했다. 1920년대에 프랑크푸르트에서 급진적 현대주의와 마주친 레너는 태도와 양식 모두에서 냉철함을 견지하며 디자인의 가치를 실현했다. 뮌헨에 돌아와 디자인 장인학교를 이끌 때에는 젊은 얀 치홀트 등을 교수로 영입해 현대주의 타이포그래피를 성숙하게 발전시켰다. 1924년 그가 디자인에 착수한 푸투라는 기하학적 엄격함과 수공예적 세밀함을 두루 갖춘 ‘우리 시대 서체’로 20세기에 가장 성공한 활자체 중 하나가 되었다. 일찍부터 디자인에 대한 생각을 글로 밝혀 온 레너는 나치스가 세력을 넓히던 시기에도 양심에 따라 발언하고 행동했으며, 결국 1933년 정권을 잡은 나치스에 체포, 모든 직위에서 해임되어 사실상 내부 망명에 들어갔다. 그럼에도 활자체 디자인과 저술 작업을 계속하던 그는, 제2차대전이 끝난 후에도 경험과 이성에 바탕한 목소리로 당대의 디자인 문제에 대해 발언을 이어갔다. 이 책 «파울 레너»는 그동안 디자인 역사에서 조명되지 않거나 과소평가됐던 파울 레너를 정면으로 다룬 첫 번째 연구서이자, 19세기와 20세기 디자인의 가교로서 평생 어떠한 교조주의에도 흔들리지 않고 전통과 현대 사이의 긴장을 유지하며 ‘영원히 타당한’ 가치를 좇은 한 개인의 삶을 기록한다. ----- 서문 특정 디자이너나 미술가를 연구하는 작업에는 흔히 역사적 계보에 해당 인물을 새기려는 암묵적 의도가 있다. 내가 파울 레너에 처음 관심을 두었을 때에도 그런 욕망이 없었다고는 말할 수 없다. 1920년대 말에서 1930년대 초 전성기 현대주의 그래픽 디자인에서 중요한 요소였고 지금도 널리 쓰이는 활자체 푸투라를 그가 디자인했다는 사실은 나를 매료했다. 그처럼 영속적인 작품 뒤에는 어떤 인물이, 어떤 생각이 있었을까 하는 물음이 나를 사로잡았다. 레너 연구를 시작하기 전, 나는 그가 1922년에 발표한 «예술로서 타이포그래피»를 본 적이 있다. 엄격한 전통 양식에 따라 고딕체로 짜인 책이었다. 고딕체의 미묘한 성질을 배우지 못한 영국인에게, 그 책은 독일 문화의 신비로 둘러싸인 물건처럼 보였다. 단순하고, 간결하고, 언뜻 보기에 국제성을 호소하는 푸투라에서 그보다 거리가 먼 작품은 상상하기 어려웠다. 이처럼 파울 레너 디자인 작업의 두 지표는 서로 다른 문화적 배경에서 나온 듯했기에, 나는 그의 작업에서 일정한 대비를, 아니면 적어도 발전 과정을 알아내 보리라 마음먹었다. 그런데 막상 레너에 대한 연구를 시작해 보니, 순수한 시각적 자료보다는 오히려 그가 디자인에서 현대성을 바라본 관점, 왕성히 글로 써서 밝힌 그 시각이 더욱 관심을 끌었다. 나는 디자이너 레너를 그가 활동한 시간과 장소에 놓고 보려 할 것이다. 나는 그가 디자인한 작품뿐 아니라 그가 디자인을 두고 한 말에도 집중할 것이다. 그가 밝힌 관점이나 의도가 늘 실천과 일치하지는 않았지만, 그가 한 말은 자신이 속한 분야를 성찰하려 했다는 점에서, 그리고 당대 담론과 교류하려 했다는 점에서 그 자체로 가치 있다. 파울 레너의 사유와 행동을 평가할 때, 이상적인 바이마르 시대의 현대주의자 상과 비교해 가늠하는 일은 잘못일 것이다. 하지만 레너를 연구하는 동안 내 마음 한구석에는 그처럼 불가능한 초인상이 척도로 자리 잡았다. 그 가상의 현대주의 디자이너는 어떤 인물일까? 거의 확실히 남성일 것이다. 독일인이나 러시아인 또는 동유럽인으로 나이는 서른 정도일 것이다. 순수미술가로 교육받았지만 부르주아 예술관은 경멸하며, 공산주의자가 아니라면 적어도 사회민주주의자일 것이다. 낡은 세계의 계급 차별이나 종교적 관습을 거부하는 자유사상가로서, 세속적이고 기술적인 새 세상을 열렬히 반길 것이다. 현대적 대도시에서 살고 일하며, 책을 왕성히 읽을 뿐만 아니라, 영화를 즐기고 재즈 음악을 들을 것이다. 이처럼 공상적인 인물에 파울 레너를 비교해 보면, 뚜렷한 차이가 금세 드러난다. 바이마르 공화국이 탄생한 1919년에 레너는 벌써 마흔이었다. 그는 자신이 비정치적이라 여겼고, 영화를 포함해 기술혁신에 대해서도 얼마간 회의적이었다. 나는 현대주의 신화의 이면을 더 깊이 파헤쳐 그 신화에 쉽게 동화하지 않는 인물들의 실상을 일부 알아내려 한다. 내 의도에는 기존 역사가 제시하는 현대주의 타이포그래피의 정설을 보완하려는 뜻도 있다. 그 정설의 중심에는 얀 치홀트, 헤르베르트 바이어, 엘 리시츠키 같은 일부 개인 디자이너와 데사우 바우하우스에서 이루어진 소량의 작업이 있다. 후자에는 오늘날 바우하우스를 둘러싼 신화 덕분에 부당하게 신비한 기운이 서린 상태이다. 오빙크는 새로운 타이포그래피가 “바우하우스에서 촉발되었지만 특히 독일인쇄장인학교[레너 교장 시절 치홀트도 가르친 학교]에서 발전했다”라고 지적했다. 장인학교는 그래픽 디자인 역사에서 거의 언급되지 않았고, 레너의 타이포그래피 저작에 담긴 생각은 한 번도 진지하게 논의되지 않았다. 이어지는 레너 연구는 그가 성공적인 활자체 푸투라 외에도 글쓰기와 뮌헨에서 펼친 교육 활동을 통해 현대 타이포그래피에 크게 이바지했다는 주장을 함축한다. 이 책은 연대순으로 정리해 놓았다. 각 장은 해당 시기의 일반적 경향을 간략히 소개하고 그 시기에 레너가 한 일을 살펴본다. 넷째 장과 다섯째 장은 레너의 이력에서 두 국면을 자세히 들여다 본다. 하나는 그가 선구적 활자체 푸투라를 디자인한 과정이고, 다음은 그가 나치 당국에 체포된 사건이다. ‘현대주의’, ‘현대적’, ‘현대성’ 등 용어의 상대적 차이에 대한 호기심도 책 전체를 아우르는 관심사였다. ‘현대주의’라는 말은 조심스럽게 썼다. 나는 제2차대전 후 미국 미술사학자들이—특히 클레멘트 그린버그가—개발한 용어로서 현대주의, 즉 자기 반영적 예술 실천으로서 현대주의라는 말은 쓰지 않으려 했다. 20세기 후반에 등장한 그 현대주의 개념은 같은 세기 전반에 일어난 미술과 디자인 운동에 소급 적용된 듯하다. 독일에서 양차 대전 사이에 활동하던 디자이너들은 ‘현대주의’를 말하지 않았다. 여러 ‘주의’가 있었지만, 그 신봉자들은 자신들이 무차별적 ‘현대주의’ 집단에 속한다고 여기지 않았다. 20세기 현대주의는 1920년대에 젊은 영웅들이 한 발언을 선별적으로 확대해석해 엮은 역사적 구성물이자, 사후적 현상이다. 현대주의에 일관된 역사적 논리가 있다고 암시한 첫 사례는 아마 1936년에 ‘현대 운동’을 설명한 니콜라우스 페브스너일 것이다. 내가 말하는 ‘현대주의’는 양차 대전 사이의 디자인과 연관된 양식뿐 아니라 이념적 차원도 가리킨다. 디자인에 대한—그리고 삶에 대한—이성적, 과학적 접근을 믿고, 인간은 본디 합리적이라고 가정하는 이념이다. 이는 계몽 시대로까지 거슬러 가는 ‘현대성’ 개념과 중첩한다. 일곱째 장에서 나는 이처럼 뒤얽힌 용어들을 더 꼼꼼히 풀어 볼 생각이다. ![]() ![]() ![]() 출판:『월간 디자인네트』제164호, 「디자인 토크: 디자인 참교육은 어디에」, DESIGNNET vol. 164, DESIGNNET, Korea, MAY 2011. 토크 이전에 쓴 글. 월간 <디자인네트>에서 디자인 교육에 관한 토크를 진행한다하여 초청을 받았다. 오늘 저녁이다. 교육자가 아닌 나는, 늘 배움의 기회를 찾아 떠나는 학도와 여행자의 입장에서 이야기할 것이고, 각 분야 선생님들과 현업 디자이너들의 이야기를 귀 기울여 듣게 될 것이다. 이전에 '그래픽디자인 교육의 문제'라는 에세이를 쓴 적이 있는데, 내가 말한 '문제'는 내가 받은 교육에 어떤 문제가 있다는 뜻이 아니라, 제도권 디자인 교육현장과 실무현장에서의 교육에 관한 경험적 사례를 기록하고 나아갈 길을 모색해보려는 의도에서 시작된 것으로 '디자인 교육에 관한 이야기'라는 의미에 가까웠다. 그런데 이 글을 나눈 의외로 많은 디자이너들과 타학교 재학/졸업생들이 자신의 교육적 경험 중에는 '심각한 문제'가 많다는 이야기로 반응하는 모습을 보고 깊은 생각에 잠겼다. 사실상, 정시화 선생님을 비롯하여 교육/인격 모든 면에서 진실되고 존경하는 선생님들과 그분들이 지켜온 전통 안에서, 짧지만 그 견고한 전통의 기초위에 지금도 시대적 흐름을 선도하며 앞으로 계속 나아가는 선생님들, 열정적인 친구들과 함께 균형있는 교육을 체험한 나로서는, 특별히 개인적 교육의 문제점에 대하여 말할 거리가 없는 것을 대단히 감사하게 생각하지만, 듣는 바와 현업의 경험에 의하면, 지금 한국의 디자인 교육에 어떤 문제의 지점이 있는 것만은 분명해 보인다. 아울러 디자인 교육의 모든 문제를 국가 시스템과 학교, 그리고 현장 등 외부적 요인에 전가하는 것이야말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올바른 교육제도와 과정, 훌륭하고 참된 선생, 빼어난 선배 디자이너, 좋은 시설 등 교육적 토대와 환경이 필요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학생들 스스로 자신의 방향성을 세우고, 선생의 가르침이 올바른 것인지 판단할 수 있는 성찰적 거리를 마련하고, 시스템의 부조리를 간파하여 대안을 모색하는 등, 사유할 수 있는 능력과 정신 그리고 그것을 실현할 수 있는 실제적 기량을 기르는데 시간과 노력을 투자해야 한다는 점이다. 누구도 밥을 떠먹여 주지 않는다. 언제나 모든 문제의 근원은 '나'라는 사실. 남들이이루지 못하거나 시도조차 안했다면, 실패할지언정 내가 도전하면 되지 않는가? 제대로 된 작업 하나 안하면서, 올바른 글 한 줄 읽지 않으면서, 디자인이 어쩌니 교육이 어쩌니 떠드는 것이 추하기는 학생이나 선생이나 마찬가지인 것을. <카드와 함께 콜라보레이션> 마포디자인클러스터 4.8 (금) ~ 4.16 (토) ---------------------------------------------------------------------------- 국민대 시각디자인과 학생들의 특별전시 <카드와 함께 콜라보레이션>무한히 넓은 시각디자인의 영역 안에서 각 분야간의 콜라보레이션 가능성을 살펴보는 전시입니다. 9명의 시각디자이너들이 각자의 성향 및 특성을 담은 개인작들을 전시하며 그 개인작들간의 콜라보레이션 작업을 함께 선보입니다.'랜덤 카드를 통한 콜라보레이션 작업'이라는 독특한 방식을통해 다양한 실험과 그 가능성을 엿볼 수 있을 것입니다. --------------------------------------------------------------------------- 참여 디자이너 김문규, 김벼리, 김지홍, 김효주, 민준기, 박성완, 윤성권, 윤형준, 이령화 02-323-3506 www.dcluster.seoul.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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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근준(이정우) | ..
I know 1+1 equa.. [sic] ㄷㄷㅇ ynkim eunsoo esam 하루 Ara+ Say Hello to Bla.. aryun Golden Tree a... things lalal PHILOGRAM : BURN euirae ㅎㅅㅅ.ㅋㄹ Donghyeok Shin Hey-ok 김번 그림 changeun, e 최근 등록된 덧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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