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ssay] 그래픽디자인 실무에 있어서 맥락에 대한 고민 1

그래픽디자인 실무에 있어서 맥락에 대한 고민 1


일반적인 디자인의 역사적 실체이자 디자인에 대한 대중적 이해의 주요 화두인 디자인의

상업적 속성은, 자본주의 사회속에서 문화적 영향력을 꽃(향기로운 꽃인지 추악한 꽃인지는

생각해 볼 문제)피우고 우리의 삶을 압도적인 힘으로 지배해왔다. 때문에 디자인 논의에

있어서 상업주의적 속성을 제한다는 것은 디자인의 역사적 존재를 부정하는 것에 다름

아니다. 그런데 작금의 그래픽디자인 실무는 단순히 상업적 디자인의 문제로 치환할 수

없다는 것을 많은 디자이너들이 느끼고 동감할 것이다. 물론 이 논제 역시 요즘의

문제라기보다는 디자인의 역사와 함께해 온 끝없는 단골 논쟁거리이지만, 근래에 들어

더욱, 필자를 포함한 비슷한 세대의 그래픽디자이너들이 디자이너로서의 정체성과 방향성에

대한 문제를 고민하는 가운데 상당한 부분을 차지하는 문제라 판단한다.


디자인 에이전시나 컨설턴시를 통한 ‘상업적 디자인’에 있어서 가장 중심이 되는 가치는

디자인 의뢰인(대다수가 기업이나 기관)에게 최상의 서비스를 제공하고 이윤 추구에 도움이

될 만한, 의뢰인의 요구가 가장 잘 반영된 디자인을 만들어 내는 것이다. 물론 여기에도

디자이너의 주관적 개입이 당연히, 자연스럽게 허용되지만 결과물은  개념이나 표현적

측면에 있어서 의뢰인의 요구에 잘 맞춰져 있는 것이 대부분이다. 이를테면, 모기업

연차 보고서Annual Report의 경우 아이디어와 기획에 있어 디자이너들의 개입이 시각적으로

표현되어 있지만 주관적으로 다룰 수 있는 범위는 상대적으로(그 상대는 다음 단락에서 논의)

한정되어있다. 물론 의뢰인의 태도, 디자이너의 의사소통 능력이나 처한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문제이지만 연차보고서나 대기업 홍보 책자를 만드는데 기존의 디자인 틀을 벗어나는

어떤 실험적인 행위는 기업 입장에서 위험요소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 현실이다.


이와는 달리 문화예술 분야나 단체,  규모가 작은 개인 의뢰인을 상대로 한 그래픽디자인의

경우 실제로 디자이너의 주관적 개념이나 실험적 표현을 현실화시키기가 기업의 이윤추구를

우선시하는 상업적 디자인에 비해 상대적으로 수월하다. 역시나 특정 상황이나 경우마다

다르긴 하지만 대체로 제약이 적다는 이야기이다. 예컨대, (필자의 글에서 자주 등장하는)

슬기와 민 듀오가 문화영역에서 활약하며 만들어 낸 리플렛, 책이나 성재혁 교수-필자가

2007년에 협업해왔던 예술 분야의 포스터, 리플렛 등의 디자인 진행 과정과 결과물들이 있다.

이외에도 공공디자인이나 환경디자인 등, 제3의 디자인이 존재할테지만, 이야기의 시발점은

위 두 영역이다. 이 두 영역은 모두 매체나 방법에 있어서 일반적 그래픽디자인의 범주에

속하고 상업적, 문화적 속성을 둘 다 포함하고는 있으며, 융합될 수도 있고 접점도 있겠지만,

현상적으로 볼 때 그 중심 가치에 있어서 성격이 다른 디자인이다. 따라서 이 두 영역은 맥락이

다르다.


물론 다르다고 편을 갈라서 어느 것이 옳다를 논하려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이 맥락을

무시한 채 두 영역을 비교해서 논할 때 발생한다. 개인의 목소리가 강한(작가연 하려는)

여러 디자이너들이, 개인적/예술적 표현의 영역을 인정받을 수 있는 디자인이 상업적인

제약에 의해 표현의 자유가 절제/제거된 것보다 가치있다는 암묵적이고 추상적인 편견에

기대어 있던 탓일까? 학생들은 학교에서 주관적인 측면이 극대화된 과제들을 진행하다가

디자인 에이전시에 들어서서 기업의 일을 의뢰받아 주관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영역이

상대적으로 축소된 (개인적 표현 이외에 의사소통의 요소와 범위가 더욱 복잡해지고

다양해진), 기업의 이미지를 극대화시켜주는 ‘상업적’ 그래픽디자인을 진행할 경우, 재미도

없고 문화 영역의 디자인보다 질적으로 “별로다.”라고 느낄 수도 있다. 반대로 상업적

디자인만을 추구해온 어떤 디자이너가 디자이너의 주관성이나 방법론이 개입된 문화 영역의

디자인을 보고 “이건 뭐 디자인도 아니고 예술도 아니다.”라고 평가 절하할 수도 있겠다.

아니면 상업적 성취가 궁극의 목표인 디자인이라고 해서 모두 디자이너의 주관이 배제된

것은 아닐테고, 문화 영역의 디자인이라 해서 모두가 작가주의적인 작업은 아닐테니,

주관-객관/예술-상업의 모호한 경계를 설명하려는 방식은 가치 판단의 문제라기보다는

오히려 취향이나 감정의 문제로 옮겨갈 수도 있겠다.


아무튼 앞서 말한 양분식의 판단은 양쪽 모두 상황과 맥락을 무시했다는 점에서 다소

위험한 판단이 될 수 있다. 개인 표현의 욕구가 강력한 많은 디자이너들에게 작업의 특성

상, 예로든 문화영역 디자인 작업이 상대적으로 더 ‘재미있어’보일 수 있는 것이 사실이고

본인이 추구하는 그래픽디자인의 문법도 이쪽에 가깝지만, 이것을 위와 같이 우열의

시각으로 바라보는 것은 옳지 못하다. 이것은 사실 현상의 문제이지 우열의 문제는 아니기

때문이며, 디자인을 포함한 사회의 여러 현상을 단순히 그것이 ‘어떠하다, 아니다’라는

식으로 양식화 혹은 개념화 시킨 후, 옳고 그름을 따져 물으며 정치/권력의 도구로 악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결국 상대적으로 큰 규모의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는 기업-상업주의적 디자인을

업으로 삼은 디자이너들도, 문화 영역에서의 실험적 디자인으로도 살림살이에 큰 어려움이

없을 정도의 여건이 되는 프리랜스 디자이너나 교육자들 모두 서로의 영역을 존중해야 한다.

(물론 상업주의적 디자인이 몰고온 사회적 과소비를 통한 정신적 타락과 디자인 역할의

제한은 오늘의 디자이너들이 넘어야 할 과제이지만, 이 문제는 또 별개의 논제이므로.)

아니면 두 마리의 토끼를 모두 잡는 방법도 있겠으나 현실적으로 쉽지만은 않아 보인다.


이 모두가, 현실적으로, 당장은 개인이 처한 환경과 주관에 따라 어떤 것을 택할 것이냐

아니면 둘다 조화롭게 통합 하느냐의 문제이겠다. (여러 그래픽디자인 전문회사들이 기업의

규모를 유지하기 위해 상업적 디자인에 매진함과 동시에, 소위 문화적 출판물--일반적으로

돈이 안 된다는 인식의--을 만드는 현실이지만, 이 지점에는 문화적 디자인을 하려면

자본적 기반이 우선이라는 피할 수 없지만 재고의 여지가 많은 사상이 전제되어는 듯하다.

미래란 확신 불가능한 것이기에, 자본주의가 최선의 시대적 가치이자 불가항력적 시스템으로

존재하는 한 상업주의적 디자인이 주류 가치로서 영생을 누릴지도 모르는 일이고, 문화 영역의

디자인이 확실한 대안적 디자인으로 살아남을지도 미지수다. 따라서 진보된 시대를 살아갈

젊은 우리에게 상업주의의 도구로 전락한 디자인을 비평하는 자세를 견지하는 것은 

필요하지만, 당장 모든 그래픽 디자이너에게 "그러니까 지금 당장 모든 상업적 목표를

추구하는 디자인에 끌려다니는 행위를 관두고, 문화적인 영역에서 작가로서의 권위

(디자이너의 사회적 입지 어쩌구를 운운하며)를 가지는 디자이너가 되어야 한다."고

교조주의적으로 선언한다면, 많은 디자이너들이 자신과 가족의 생계를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고, 디자인에 의존한 사회분야가 정신적 공황과 혼란에 빠질 지도 모른다.


안타깝게도, 이러한 맥락에 대한 가치 판단과 미래의 고민은 우리나라는 물론 전 세계

그래픽디자인학과 졸업생들이 (디자인을 계속 할 생각이라면)마주해야 할 문제이며, 어떻게

변화할지 모를 오늘날의 세상에서, 언급한 두 영역에 국한되지 않는 이야기이다. 이것은

그래픽 디자이너가 피고용인 혹은 노동자로서 직면한 직업적 위기 혹은 생계의 고민이자,

사회속에서 디자이너로서의 철학과 방향성을 세우는, 혼란스럽고 우울하지만 도전의 여지를
안겨주는 우리 시대 청춘들의 잠 못 이루는 자화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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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어민 | 2008/12/29 22:41 | design literacy | 트랙백 | 덧글(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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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ur_delight at 2008/12/30 11:36
기업의 이미지를 극대화 시키는 일이 문화 영역의 디자인보다 질적으로 별로라고 생각한다는데...
어떤 것을 '디자인의 질'이라 하는거지? (다 알잖아~라는 대답은 반사하겠음.;;)
Commented by 어민 at 2008/12/30 14:45
글을 잘 읽어보시기 바랍니다. 기업의 이미지를 만드는
디자인이 문화영역의 디자인보다 질적으로 별로라고
말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전혀 그렇지 않으니
디자인에 있어서 맥락을 이해하자는 이야기입니다.
어느 쪽이 우월하지도 열등하지도 않다는 것이 이 글의
핵심입니다. 분명 우열을 생각하는것이 위험하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다만 ‘질적 차이’라는 단어를 민감하게 받아들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런데 문맥을 잘 살펴보면 그 ‘질’이란 분명
학창시절에 필자를 포함한 주관적인 성향이 상대적으로
강한 디자인 작업을 하던 사람들이 기업의 이미지를
만드는 일반적 디자인 환경—디자이너의 주관적,
정치적 견해등을 디자인에 담아낼 때 상대적으로 제약이
큰—에서 주관적 성향을 녹여내기 힘들기 때문에 느끼는
내적 가치 갈등에 가까운 문제이지 물리적 성질이나
시각-조형적 품질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더군다나 그 질적으로 별로라고 느꼈던 감정 조차
현장에서 ‘기업의 이미지를 극대화’ 시키는 작업을
직접 경험을 해보니 이성적 판단이 아닌 과거의
오만이었고 오류였다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선택의 문제이자 맥락의 문제라고 이야기 하고
있는 것이죠.

그 질적 차이에 대한 발언은 과거의 오류에 대한
성찰이므로 민감하게 받아들이지 않으셨으면하고,
주관적 견해의 반영은 디자이너의 성향이자 방법론에
대한 연구이지 이것이 정답이다라고 말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것이 내가 추구할 디자인을 결정할 것인지에
대한 판단은 유보되어 있습니다.

참고로, 같지는 않지만 관련있는 유명한 사건인
네덜란드의 그래픽디자이너인 빔 크라우얼-얀 반 토른
논쟁을 찾아 보시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그리고 저는 저런(다 알잖아)식으로 생각하거나
말하지 않는 사람이라는 걸 누구보다 잘 아실텐데?^^

어쨌든 의미있는 지적 감사합니다.
Commented by ur_delight at 2009/01/05 13:26
오우, 다시 제 질문을 보니 오해소지가 다분하군요,

그 부분에서 필자의 '주관적인 관점'이 담겨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문맥을 이해못해서가 아니라
왜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내적가치갈등'을 '디자인의 질'이라는 말로 표현한다고 생각하는지,
그리고 필자가 생각하는 '디자인의 질'이란 무엇인지에 대해 묻고 싶었답니다.(^^;)
결과적으로는 부분적으로 답이 된 것 같네요.
Commented by 송은 at 2009/01/06 05:24
민선오빠 잘 지내세요? 늘 생각하는 거지만 역시나 힘든 부분이네요. 저는 잠깐 디자인에서 멀어져 끼룩끼룩 갈매기 많은 바닷가에서 요양 중이온데, 오빠는 고단한 일터에서 어찌 지내시는지. (포스팅보면 그 치열한 열기가 저에게까지 전달되는듯) 댓글 중에 빔 크라우얼 - 얀 반 토른 의 논쟁이 궁금해요 구글에서 찾다가 실패하고, 기냥 물어볼래요 꺄웅
Commented by 어민 at 2009/01/06 12:57
네덜란드 디자이너 빔 크라우얼Wim Crouwel과 얀 반 토른Jan van Toorn의 논쟁에 관한
정리는 슬기와 민의 『불공평하고 불완전한 네덜란드 디자인 여행』중 마이클 록Michael
Rock의 강연 ‘광란병’에 잘 번역되어 있습니다.

내가 쓴 글하고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기보다는 디자이너의 주관과 견해 그리고 객관성에
관한 입장 차이, 작업물을 보여준 대표적인 디자이너간의 논쟁(1972)이고, 비슷한 고민을
하는 디자이너들에게는 당연히 영원한 과제같은, ‘고전적인’ 논쟁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여기서 (이전 역사로 거슬러) 가지를 치는 객관주의적 디자이너로 폴 랜드 같은
‘모더니스트’ 디자이너가 대표적이고, 주관성의 개입에 관한 문제는 탈현대주의 이후 수
많은 디자이너들의 작업을 살펴보면 당연히 잘 아실테고.

중요한 것은 역시 두 입장 중 어느 것이 옳거나 그르다거나, 더 좋다거나 나쁘다거나 식의
접근이 아니라 두 가지 의견이 던졌던 물음의 가치, 즉 모두 그래픽디자인의 속성과
자리매김에 관해 이념적이고 비평적으로 생각했다는 점이겠지요.

사견이지만 사실 그들도 그렇게 주장은 하였으나, 그들의 작업에도 분명 완벽히
주관적이거나 객관적인 시각이 적용될 수 없었다고 보게 되네요. 정보를 다룬다는 것
자체가 대부분 객관적(으로 알려진)인 재료를 가지고 하는 것이고, 디자이너의 손길을
거치는 순간 어떤 형태로든 주관성의 개입을 피할 수 없기 때문이겠죠.

결국 크라우얼과 반 토른이 어느 쪽에 무게중심을 두었느냐의 차이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그래픽디자인이 완벽히 객관적이어야 할 필요가 없고 또 그럴 수 없다는
쪽에 무게를 둡니다. 아무튼 나도 자료를 더 찾아봐야 하겠네. 얀 반 토른의 디자인이나
정치적 견해에 관한 글은 「design beyond Design」(윤원화 외 역, 『디자인을 넘어선
디자인』, 시공사, 2004)에 나와 있으니 참고 하시고. 뭐 벌써 읽었을 것 같지만 ^^
아무튼 출타중이라니 몸 건강히, 열심히놀고 많은 생각과 추억들 담아오길. 또 연락해~
Commented by 어민 at 2009/01/06 13:05
그리고 내가 태어나기 한참 전의 이야기였다는 사실이 재미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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