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09년 2월 16일, 김수환 추기경 사망. “사랑하고 용서하라.” 이미 성경에 있는 말이지만, 오늘의 우리가 얼마나 서로 사랑 안하고 용서 안하면 이 말이 새로이 들릴까. 그런데 이 말을 보며, 사실 그 말 자체보다는 이러한 종류의 사회적 발언과 실천 혹은 기능 자체가 과연 오늘날 개신교회에 존재할까, 그럴 자격이 있는지에 대한 궁금증이 증폭되었다. 다시 말해, 고인의 떠남을 바라보며 그의 행적과 실천을 돌아보면 요즘 한국의 개신교회에는 이렇게 사회의 등불이 되는 지도자나 상징적 존재(최소한)가 과연 몇이나 될까하는, 그리고 교회와 성도들은 그러한 실천을 사회속에서 제대로 이루고 있는지에 대한 의구심이 밀려온다. 즉, 기독교인의 관점에서, 김수환 추기경이 사회속에서 행한 실천—1970년대 유신 정권에 의해 유린된 인권을 회복시키는데 앞장서고, 80년대 민주화를 향한 목소리에 힘을 실었으며, 사형수와 장애인, 철거 난민 등 인권의 사각지대에 놓인 이들을 위해 자신을 희생하는 등— 을 돌아보며 (오늘날 천주교회 전체의 상황이 어떤지는 잘 모르나) 작금의 한국 개신교회에서 벌어지는 부패, 탐욕, 몰락, 그리고 그것을 스스로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음에 투영해 볼 때, 속된 말로 ‘뚜껑이 열리’며 낯이 뜨거울 뿐이다. 물론 한국의 기독교가 1800년대 말 이 땅에 뿌리를 내리게 된 이후로 세브란스 병원과 연세대학교를 비롯한 수 많은 의료기관, 사학을 설립하며 이 나라의 복지와 교육 발전에 지대한 공헌을 하고,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금도 행해지고 있는) 수 많은 사회 구제-헌신 그리고 문화적 사업등을 전개함으로서 이 나라의 사회적 안정과 문화적 현대화에 큰 기여를 한 것은 누구나 잘 아는 사실이다. (이조차 극단적인 선교의 정치논리와 부정으로 폄훼하는 반 기독교 세력이 존재하는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게다가 예수의 가르침대로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잘 하고’ 있다면 가시적으로 드러나지 않는 부분들이 실로 더 많이 존재할 가능성이 높으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의 개신교회가 참 된 지도자(의 상징)를 찾지 못하고, 갈 길을 잃은 성도들과 함께 모욕적인 욕을 얻어 먹고 있는 가장 큰 이유인 교회 내부의 세속화는 위와 같은 사회 저변의 역사적, 동시대적 공헌을 무색케한다. 혹자는 가시적으로 보여지는 일부의 이미지가 안티-기독교 세력이나 언론의 호들갑 보도등에 의해 과장되며 전략적으로 대중-적대화된 문제에 불과하다 할지 모른다. 물론 일부 언론에서 ‘목사의 자격이 이미 없는’ ‘가짜 목사’의 범죄를 목사의 과오인양 보도하여 대중의 확대해석된 반 기독교 심리를 조장하는 부분도 있었으며 ‘개독교’라는 모욕적인 용어로 비논리적이고 폭력적인 공격을 일삼는 일부 집단의 모습도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일부이든 많은 부분을 차지하는 것이든 간에, 이러한 빌미를 제공하는 현상 자체가 이미 교회가 내부적으로 제 다움을 찾지 못하고 (고로 사회적 기능을 할 수 없고) 쇠락해 가고 있음을 방증하는 것일게다. 그리고 언론이나 극단적 반대세력이 과장, 확대한 것이다라고 피해가기에는 이미 교회 내부의 세속화가 절정에 다다랐고, 이는 비판적인 시각을 가진 현대 교인이라면 이미 피부로 체험하고 있을 것이다. 예컨대 교회 세속화 중 빙산의 일각이지만, 하나님이 큰 곳에서 예배 드리라 한적도 없는데, 어렵고 헐벗은 사람들을 도와주기는 커녕 빚을 내서라도 땅 사고 건물 짓기에 열을 올리는 일부 ‘규모있는(이것도 아주 아주 세속화된 기준임)’ 교회들을 바라보면 한심스럽기 짝이 없고 저게 교회인가 싶다. 경기도 지역 모 중대형 교회 교인들의 증언에 의하면, 무리한 건축으로 인한 빚이 수억이란다. 일부 순수한 교인들이 피땀흘려 벌고 경건한 마음으로 드렸을 헌금은 욕망의 빚을 값는데(그 비율이 얼마든 간에) 투입된다는 이야기겠고. 건축과는 다른 이야기이지만 역시 서울 모 대형교회 교인의증언에 의하면, 담임목사의 차량이 서민들은 ‘꿈도 못꾸는’ , 수억이 넘는 영국산 최고급 차량으로 알려져 있다.(물론 목사라고 타고 싶은 차 타지 말고 그런 향유를 하지 말라는 법이 없지만, 적어도 낮은 자를 위해 헌신할 사회적인 책임과, 예수의 가르침을 누구나 존경할 수 있는 아름다운 모습으로 실천하고자 하는 정신을 가진 목사라면 일부러라도 그 돈을 한 푼이라도 아껴 사회를 위해 희생하며 예수의 발끝이라도 따라가려 노력할텐데.) 물론 구체적인 정황을 확보하려면 세무 조사나 인터뷰와 같은 절차가 필요하겠지만, (해당 교회가 응할리 만무하고, 일례로 금란교회 김홍도 목사 불륜사건에서 보았듯 많은 교인들이 이단인 모집단 광신도들의 방송테러와 다를 바 없이, 대부분 법적으로 처벌받아야 할 것을 이성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하는 모습들을 돌이켜볼때 매우 어려워 보임) 사실 위와 같은 이야기는 근 10 여년간 여러 교회의 성도들과 목회자 관련인들에게 어렵지 않게 들을 수 있는 이야기이다. 어쨌든 다시 건축 이야기로 돌아와서, 일반적으로 증가하는 교인 수용이 교회 신축을 합리화하는 표면적 논리일텐데, 아니 큰 예배당 없으면 예배 못드리나? 예수가 예배드린 장소를 기억해보라.(아무리 시대를 감안한다 하더라도 성경에 어디 그런 말이?) 교회와 목사, 성도들까지 크기와 성공 컴플렉스의 노예가 되어버린 것인가? 나아가, 다양한 경제적 계급이 공존하는 교회내에서 행여 ‘있는’ 교인은 ‘없는’ 교인을 무시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한국 근대 건축의 대표적 키취 현상인 흉물스러운 뾰족탑(의 도상)만 있다고 다 교회가 아니다. 교회를 하나의 공동체가 아닌 건물이나 크기와 같은 물질적인 관점으로 바라보는 시각을 일반 사회가 아닌 교회 스스로 가지고 있는 셈이 아닌가? 사실 웬만한 초대형 건물은 명함도 못 내미는 규모의 건축물에 몇십미터는 족히 되어보이는 초대형 십자가와 교회 간판이 달린 (그것도 밤에는 나이트인지 모텔인지 모를만큼 시뻘건) 형상을 보고 있노라면, 종교적 경외감이 아닌 물신에 제압당한 후 동화된 어떤 세속적 위압감이 느껴진다. ‘낮은 자의 하나님’은 그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 어찌 되었든, 이래놓고 길에서 시뻘건 십자가를 들고 시민들에게 ‘예수천당 불신지옥’이라는 무시무시한 말만 외치고 있으니. 이렇듯 교회가 사회의 믿음을 잃고 등불로서의 역할과 제 기능을 다하지 못하게 된 것은 거의 전적으로 교회의 책임이다. 교회의 치부를 들추는 것은 교인으로서 악몽이고, 누워서 침뱉기이며 이렇게 여기서 혼자 떠든다고 한 순간에 쉽게 바뀌지도 않겠지만, 이대로라면 한국 현대 교회는 소망이 없다. 고로 세상속의 빛이 될 자격도 없다. 교회의 세속화(세속적이지 않아야 하는 집단이므로, 오히려 더 세속적으로 보임)와 정치적 부패에 관하여 곪은 데를 건드리면 한도 끝도 없으니 이쯤에서 끝내지만, 어쨌든 찔리는 자들과 교회는 김수환 추기경의 떠남을 바라보며, 의미없는 아멘의 가면으로 위장하지 말고 알아서 반성하고 회개하길 바란다. 교인들은 사회 속에서 빛이 되길 바란다. 목사들은 교인들 입맛에 맞는 설교로 복이나 빌어 주지말고 따끔한 가르침을 전하기 바란다. 성도의 사명과 신앙의 초점이 개인의 안녕과 축복이 아닌, 예수를 닮아 세상의 빛이 되어 살다가는 것임을 깨달으며 기도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진정 하나님을 삶의 중심으로 두고 예수의 가르침을 믿는다고 고백하는 사람이며 한 사회에 속한 인간답게 살고자 하는 인간이라면. 이쯤에서 이창동의 영화 <밀양>과 현대 미술작가 조습의 작업이 눈앞을 스친다. 물론 밀양은 기독교 영화도 아니며 이창동 감독은 해당 장면들이 교회 비판의도가 전혀 없었다고 말했고, 교인들에게 신성 모독적으로까지 보일 수 있는 조습의 작업은 영화와 맥락이 다르지만 어쨌든. 기독교의 형식-세속화에 관한 조롱과, 역설적이게도 우상을 파괴해야 할 교회가 만들어낸 권력의 우상에 대한 조소를 한 교인의 시점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점에서 스스로를 성찰케 한다. 그런데, 어쩌면 필자가 쓰는 이 글이 “나는 그나마 제대로 정신이 박힌 교인이니 면죄부를 달라”고 하는 것만 같은 망상일 수도 있겠다. 게다가 뒤돌아보니 나도 아직 ‘사랑하고 용서하긴’ 멀었나보다. 이 글과 관련있는 글을 자동검색한 결과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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