Graphic Design is
Nothing.
by 어민 | 2009/02/18 00:00 | design literacy | 트랙백 | 덧글(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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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ed by junho at 2009/02/19 10:57
그래픽 디자인이 왜 아무것도 아닌가요? 그래픽 디자인을 공부하고, 하는 사람으로서 그리고 그래픽 디자인이 좀 더 좋은 세상을 만드는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믿는 사람으로서 이해하기 어렵네요. 보충설명 부탁드려도 될까요?
Commented by 어민 at 2009/02/21 00:55
junho님 안녕하세요. 누추한 곳에 찾아주셔서 고맙습니다. 그래픽 디자인 한다는 사람으로서
그래픽 디자인이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한다면 곧 그는 ‘아무것도 아닌 것을 하는 사람’이
되니까 굉장히 자학적이고 모순적인 말로 비춰질 수도 있겠네요. 사실 저 말에 그런 의미를
담지는 않았습니다만 저 짧은 구절에서는 있는 그대로 그렇게 보여지는 것이 사실이니 그
부분에 대해서는 유감스럽고, 디자인을 하지 않거나 디자이너를 꿈꾸는 인재들이 보게 된다면
허망한 혼란이 될 수도 있겠네요. 어쨌든 저도 단순히 말을 던져놓고 있는데 생각할 시간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junho님 말씀대로 더 좋은(아름답고 기능적이며 산업과 경제, 문화에도 기여하고 기분좋고
물질-정신 양면으로 풍요롭고 인간의 의사소통 영역을 확장시키고 등등) 세상을 만드는데
역사적으로도 (그래픽)디자인이 실제로 기여한 부분이 크고 역시나 그러한 부분이 있기 때문에
저도 공부하고 있는 사람중의 1인 일뿐이죠.

또한 그러한 그래픽 디자인의 아름답고 온건하며 긍정적인 목적과 실재는 디자인을 만드는
사람이나 사용하는 사람에게 있어(두 영역은 오늘날 사실상 별 구분과 의미가 없어지고
있지만) 너무나 근본적인 것이고 당연한 것이겠죠. 그런데 사실 사회 어느 분야나 그러한
정당성을 가지고 존재하는 것이기 때문에 디자인만 유별난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다시 말해, 저러한 극단적인 표현의 이면에는 디자이너로서 스스로를 돌이켜 볼 때 디자인이
뭔가 특별한 것이고 고로 내가 뭔가 대단한 일을 한다고 생각하게 되며 속된 말로 ‘자뻑’
이나 나르시시즘에 젖은 듯한 착각에 빠져들어 살아온 건 아닌지에 대한 자기 성찰적인
자학적 비웃음과 질문이 담겨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물론 드러나지 않았으므로 말씀처럼
오해의 소지가 충분하겠지만)

다음으로, 강력한 사회적 전달 매체와 권력으로써 그래픽 디자인이 양적, 피상적으로 발전함과
동시에, 말씀하신 것처럼 좋은 세상을 만드는 것과는 반대로 과소비의 조장이나, 브랜드
없이는 기업도, 독립된 자아로서의 개인도, 너도 나도 물질의 속박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세상을 만드는데 기여(?) 혹은 일조한 ‘하이드’의 모습도 분명 존재한다는 판단이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요즘 광고나 정책에서 ‘디자인, 디자인 경영, 어쩌구’하는 것들이—물론 긍정적인
측면이 당연히 있긴 하겠지만—과연 디자이너나 사용자에게 있어 디자인을 문화로서
바라보게 만드는 거시적 안목이 담긴 이야기인지, 디자인을 하나의 구호나 정치적 선동 수단,
단발적 이벤트 요소로 활용하는 데에만 관심이 있는건지에 대한 의문이 드는 것도 사실이구요.
이러한 의미라면 그래픽 디자인은 아무것도 아닌 것을 넘어 오히려 ‘대단히 위험한 것’ 혹은
‘잘못된 것’으로 전락할(한) 측면도 있는 것이겠구요. 그래서 (그래픽) 디자인을 대단한 것으로
포장하는 듯한 사회적 분위기가 매우 닭살스럽고 불쾌하다는 말을 하고 싶었네요.

게다가, 잘 아시겠지만 한국에서의 그래픽 디자인은 역사적으로 정책-교육의 두 가지 제도적
차원에서 산업화와 국가 정책의 도구로서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그리고 그 때는 그럴
수 밖에 없었다라는 역사적 필연성을 인정하고서라도) 거의 다른 길을 생각하지 않고
일변도를 달려왔습니다. 이는 실로 그동안 청소년(더 구체적으로는 시각디자인학과를
지원하고 싶어하는 수험생들)에게 그래픽 디자인이 뭔가 정보화 산업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는
엄청난 부가(물질적)가치를 가진 분야이고, 이를 통한 자아 실현의 희망을 잠재적으로 지닌
시대적 현상이라는 인상을 주었기 때문에, 앞서 말한 어두운 부분에 대한 비평적 시각이
거의 없는 그러한 환상(환상이 멋진 꿈으로 변할 수도 있다면 정말 좋겠지만)을 심어주기
보다는 현실을 직시하고 내실을 다져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에,“디자인도 결국 뭐 대단한
거 아니니, 스스로를 과대 포장하지 말고 자라나는 인재들에게 허망한 꿈을 심어주지는
않았으면 좋겠으며,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었으면 한다”라는 의미를 극단적으로 표현했던
것이겠습니다. 여기서 내실이란 산업과 정책 도구로써의 제한적 디자인 환상이 아닌
(예비)디자이너들이 또 다른(뭐든 간에) 그래픽 디자인의 세계를 꿈꿀 수 있게 하는
부분이겠습니다. 난립하는 디자인 대학과 과잉 배출되는 디자이너들만 보아도 이 부분은
참으로 어려운 문제네요.

덧붙혀 2007년부터의 제 관심중의 하나는 앞서 언급했던 그래픽 디자인과 직업으로서의
디자이너 문화가 산업과 정책 관련 일변도를 걸어온 부분에 있습니다. 역시 또 다른 논의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디자이너를 꿈꾸는 아이들, 대학이나 사립 디자인 교육기관 등에서
길러진 창창한 인재들이 사회로 나가서 먹고 살기 위해(혹은 각자의 꿈을 펼치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아시다시피 거의 뻔하게 정해져 있었고 아직도 그러한 길이 지배적인 것이
현실이기 때문이겠죠. 물론 그게 전적으로 잘못되었다는 것이 아니며, 디자인 문화가 한
길을 벗어나 다양성을 찾는다 하더라도 산업적 측면이 공존해야 생존할 수 있는 부분이
당연히 있을 것이고 산업과 정책을 위한 디자인은 미래적 자본주의 사회의 운명과 함께
발전해야 함이 마땅하고, 말씀하신 ‘좀 더 좋은 사회’를 만드는데 기여해야 하는 것은
당연하겠습니다.

변을 하다보니 제가 쓴 한 줄의 문구에 대한 내용 치고는 너무 길었는데, 문제가 바로
그것이었군요. 무슨 암호 풀이도 아니고 하하. 어쨌든 결론은 디자인에 대한 환상이
없었으면 하는 마음에 대한 과장된 표현이었습니다. 적절한 의견 고맙슺니다.

(글을 처음부터 이렇게 쓸것을. 하하하.)
Commented by griong at 2009/02/21 14:50
음. 어민 너 말에 공감. 좀더 단순하게 얘기하자면 Nothing 이라기보다는 Anything 이 맞을 것 같다. 부정문에서는 아무것도 아니지만 긍정문에서는 무엇도 되고...
문맥에 따라 항상 변하는 것이 그래픽디자인이 아닐까한다. ㅋ 화이팅!
Commented by junho at 2009/02/22 07:51
안녕하세요 어민님
생각보다 너무 성의있게 답글을 달아 주셔서 놀랐습니다. 저도 생각을 좀 하느라 답이 늦었습니다. 그래픽디자인이 다른 모든 종류의 노동에 비해서 결코 특별한것이 아니라는 말은 동의합니다. 예전부터 해왔던 생각이지만, 디자이너를 포함한 뭔가 있어 보이려고 하는 지식인들(주로 이런 사람들은 몸을 쓰지 않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죠)이 가지는 특권의식은 역겹기 그지없지요. 김규항님이 했던 말처럼, 몸을 쓰며 노동하는 사람들이 강을 건너갈 수 있는 다리를 만드는 사람이라면, 글 혹은 이미지로 세상에 자기 생각을 발언하는 (디자이너를 포함한)지식인들은 사람들의 생각의 간격을 이어주는 다리를 만드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런 관점에서, 지식인과 노동자가 자신의 직업이 '아무것도아니' 라거나 '특별할것 없는 일'이라고 생각하기 보다는 자기가 하는 일에 책임감을 갖고, 열정을 갖는 일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무엇보다 이런 의식을 갖는 일은 대한민국과 같이 근대화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은 사회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생각합니다.

누구나 자신이 살고 있는 환경, 받은 교육에 비추어서 세상을 바라본다고 생각합니다. 어민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존경할 만한 선생님을 만나고, 평균수준 이상의 교육을 받으신 어민님이 바라보는 세상을 분명 남들과 다를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디자인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제가 다녔던 중앙대학교의 수준(혹은 그 이하)의 교육을 받았을테고, 그들이 생각하는 시각디자인이란, 클라이언트의 요구대로 원하지도 않는 이미지를 만드는 노동의 연장이지, 결코 특별한 어떤 것이 아닐 겁니다. 디자인을 돈버는 수단으로만 생각하는 그들에게 지금 필요한 것은 자신이 하고(공부하고 있는) 것이 한 사회의 문화와 정신에 관련된 가치있는 일이라는 동기부여라고 생각합니다.

모더니즘 이전 공예에 불과했던 디자인이, 모더니즘을 거치면서 디자인이 사회를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디자이너들에게 꿈꾸게 해주었고, 포스트 모더니즘 시대에 이르러 디자인 또한 하나의 노동에 불과한 것이 었다는 회의주의로 바뀌게 됩니다. 하지만 앞서 말씀 드린 것 처럼, 대한민국은 아직 근대화 조차 이루어지지 못한 나라라고 생각합니다. 전근대적인 사회가 모더니즘의 단계없이 포스트 모던으로 넘어갔을 때 일어 나는 현상들이 대한민국 곳곳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이런 나라의 분위기는 디자인을 공부하는 학생들의 정신상태에 그대로 반영 됩니다. (티셔츠 디자인이 하고 싶었던 학생에게 굶어죽기 싫으면 광고하라고, 무채색이 쓰고 싶은 학생에게 빨간색을 쓰라고 강요하는 등의 일들이 지금 우리나라 디자인 대학에서 일어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의 평범한 디자인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디자인이 세상을 좀 더 긍정적으로 바꿀 수 있다는 희망을 꿈꾸기도 전에 '디자인은 별거 아니다'라는 냉소적인 반응을 먼저 접한다면, 우리가 걱정했던 우리사회에서 일어나는 웃어넘길 수 없는 일들이 그들의 손에 의해서 다시 반복되지 않을까 걱정됩니다.

저는 어민님처럼 특별한 환경(존경할 만한 선생님을 만나고, 자의식있는 교육을 받아온)을 거치지 않고는 우리나라에서 자의식을 갖기란 거의 불가능 하다고 생각합니다. 몇몇 사람들이 비판하고 있지만 흔히 더치디자인이라고 불리는 유행도 그것을 반영합니다. 메뚜기 때처럼 하나의 유행을 보고 끌려가는 우리가 디자인을 대하는 태도에 있어서 과연 '쿨'해질 수 있을까요. 예를들어 슬기와 민이 처음 한국에 왔을때 그들은 지금 처럼 유명하지 않았습니다. 홍대학생들은 그들의 사고방식을 받아들이지 못했고, 많은 학생들이 그들의 방식을 못마땅해 했습니다. 하지만 몇년의 시간이 흐른 후, 전시와 강연등을 통해서 유명해진(예일대 출신이라는 후광과 함께) 그들을 모방하려는 학생들이 많아졌고 지금은 하나의 유행이 되어버렸습니다. (국민대학교에서 성재혁 선생님이 가지는 영향력도 긍정적인 측면만큼 부정적인 면이 많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슬기와 민, 혹은 성재혁 선생님 처럼 하나의 작업 방식을 소개해준 사람들을 아무 생각없이 모방하면서, 디자인 뭐 별거 있어? 라고 말하는 것 보다는(자기가 모방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말하기 쉬운 거겠죠), 디자인이 (그렇지 않다고 할지라고) 세상을 바꿀 수 있는 창작이라고 생각하면서 자신만의 작업 방식을 만들기 위해 고민하는 것이 우리가 해야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제 관점은 우리가 대한민국에 살고 있기 때문에 불가피한 것입니다.

문화적 수준이 시궁창인 나라에서 우리는 좀 더 눈높이를 낮춰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내가 남들보다 좋은 환경에서 교육을 받았고 내가 가지고 있는 미적 수준이 남들보다 뛰어나다고 생각한다면, 냉소적인 자세로 세상을 내려다볼것이 아니라 이 나라의 정신 문화를 어떻게 좀 더 좋은 방향으로 끌고 갈 수 있을까 고민하는 것이 소위 지식인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어민님의 글에 대한 답이라기 보다는 요즈음의 한국의 시각디자인문화를 바라보는 전반적인 입장을 쓴 글이 되어 버렸네요. 아무튼 생각할 기회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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